조금씩 나이가 먹어가면서 자연이 참 좋습니다. 예전에는 인위적인 웅장하거나 멋진 구조물들을 좋아했는데, 그 보다는 자연이 더 좋습니다. 인간의 손에 꾸며진 화단의 꽃 보다, 길 가의 꽃이 훨씬 더 예뻐 보입니다.
선교지에 가면, 아이들이 어쩜 그렇게 예쁜지 모릅니다. 어느 아이든, 안 예쁜 아이들이 없지만, 특별히 선교지에 아이들은 '들 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번 아프리카 케냐, 말랑가 교회에 방문하였을 때, 몇몇 아이들이 나와서 저를 환영하며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해맑은 얼굴로 찬양을 부르며 맞아주는 저들의 환영이 그렇게 예쁘고 좋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한국 방송에 뉴스 가운데 책가방을 메고 힘겹게 등교하는 아이들과, 학원에서 씨름하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이제 대학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저들의 모습은 마치 원하지 않는 전쟁터에 끌려가는 모습처럼 보여 졌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모습이 색깔과 향기를 잃어버린 꽃이 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자신의 색과 향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살아갈 아이들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비교 의식'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발간한 손화신씨의 저서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우리는 살아 갈수록 비교대상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5살 때는 3명 10살 20명 18살 때는 50명 28살 때는 100명, 이제는 SNS 미디어까지 가세해 엄청난 비교의 대상 속에 상상할 수 없는 비교의 기준 속에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정작 자신을 사랑하며 살지 못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불행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처럼 당당하세요!'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이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뻔뻔하고, 믿는 구석이 없어도 당당합니다. 저들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고 그리고 행복합니다. 책을 읽으며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비교하지 않고 사랑해주는 부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부모 때문에 당당하고, 그 부모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가 비교하고 그 비교의 기준 속에 아이들이 비교하고 그래서 결국 불행합니다.
많은 신앙인들도 이 '비교의 함정'에 빠져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그리고 결국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인정해 주시고 우리 가치를 하나밖에 없는 '예수님의 피값'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들 꽃 같아도, 그 들 꽃을 천하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여러분, 당당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