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권, 특별히 오순절권과 은사주의권에서 가장 심각하게 오해되고 있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오순절권에서는 성령님은 주로 성도들에게 제2의 축복인 성령세례를 주러 오셨고, 그 성령 세례의 주요한 증표는 방언이라고 믿고 있다.
은사주의권에서는 성령님이 오신 주된 목적은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는 것이며, 그 은사들 중에서도 특별히 초자연적 은사인 방언이나 치유나 예언이나 귀신을 내쫓는 일 등을 행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믿고 있다.
만일 오순절권이나 은사주의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지 않는다면, 당연히 이단으로 정죄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순절권이나 은사주의권에 속한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믿기에, 이단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신사도운동의 극단적 행태들을 볼 때,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왜 오셨나? 성령님이 오신 주된 목적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오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오셨다. 이것이 성령님이 오신 제일의 목적이다.
성령님은 자신이 영광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오신 것도 아니다. 성령님은 다른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14절에서 주님은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성령님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은, 원문을 좀 더 정확하게 변역하면 "나에게 영광을 돌리리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오신 것은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죄인의 구속을 위한 대업을 완성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에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과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써 이루시고 성취하신 구원의 역사를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적용하시는 사역을 감당하신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선적으로 죄인이 자신의 죄성과 악성을 깨닫게 하신다.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거울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망 없는 절망적인 죄인인가를 보게 하신다.
이어서 성령님은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영광과 은혜를 보여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신다. 복음을 제시하여 복음의 달콤함을 경험하게 하신다.
이어서 성령님은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신다. 그리고 나서 성령님은 죄인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믿고 선뢰하고 영접하게 하신다.
이어서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영접한 죄인의 영혼을 거듭나고 중생하게 하셔셔,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 때 성령은 거듭난 영혼 안에 내주하시기 시작하시며(성령세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칭의되게 하시고, 양자되게 하셔서,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신다.
이어서 성령님은 거듭난 영혼이 지속적으로 자라도록 영적 공급의 역사를 감당하신다.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도록 성도의 영혼을 조명하신다. 성도의 영적 성장은 반드시 성령님의 공급하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어서 성령님은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성화되도록 이끄신다. 예배와 말씀과 성례와 기도와 같은 성화의 방편들을 사용하셔서 성도들이 점진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끄신다.
동시에 성도는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가면서 영적인 견딤, 즉 견인에 이르게 된다. 견인이란 성도들이 주님을 만날 때까지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님이 바로 이 견인의 은혜의 원천이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견디도록 붙드시고 힘을 주시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성화와 견인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를 힘입어 끝까지 자기의 믿음을 지킨 성도는, 주님이 그들을 부르시는 그 순간 영화를 경험한다. 그것은 성도들의 영혼의 영화이다. 성도들의 육신의 영화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부활함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령님은 자기를 위해 오시지 않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곳은 방언과 치유와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높여지고, 그분에게 영광이 돌아가며, 그분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현장이다.
성령님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사역을 위해 오신 것이다. 이것이 영적 분별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 신비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높여지는 현장,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강력하게 선포되고 인정되는 현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는 회심과 성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이 바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임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