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요 8:32)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암송하는 성경 구절이지만 생각해보면,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자유함보다는, 오히려 말씀에 찔리고 얽매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이 찔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말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자유'를 말할 때, 보통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피할 때 얻게 되는 자유이고 또 하나는,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때 얻게 되는 자유입니다. 후자에 조금 더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정답일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 모두 '환경'을 바꿈으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시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환경이 바뀐다고 참된 자유에 이를 수 있을까요?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한다고 해서 우리가 참된 자유에 이를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경과 처지를 극복해서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 할 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환경을 바꿈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요 14: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진리'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 우리를 영원한 심판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는 바로,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8:36에 보시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진리를 알고 계십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자유로운 자였습니다. '비천'이 바울을 누추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풍부'가 그로 하여금 느슨한 삶을 살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모든 상황과 처지에서 배부를 수 있었고, 모든 일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었던 자유함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유롭게 하시는 자 안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언제인가, 좁은 골방에서 기도하다가 통곡한 적이 있습니다. 내 몸 하나 운신하기 힘든 좁은 골방 가운데, 크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고한 십자가의 사랑이 내 영혼에 부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때 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두 겹 세 겹으로 둘러 쌓인 답답한 상황을 지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더 답답한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골방에 들어가 나를 자유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주하십시오.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진리로 자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