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서 얻은 큰 감격이 무엇이었는가 생각할 때, 나는 잊을 수 없을 정도의 즐거운 기억이 몇 가지 생각난다. 그 첫 기억은 시골집 뒤뜰에 달린 살구 열매를 마음껏 얻은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주렁주렁 달린 살구를 따기 위하여 돌을 던지는 나를 아버지께서 보시고, ‘얼른 가서 그릇을 가져오라’ 말씀하시곤, 살구나무를 몇 번 발로 차셨다. 살구가 비처럼 쏟아졌다. 살구는 밭고랑에, 도랑에, 뒷마당에, 풀섶에, 그리고 내 머리 위에도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살구를 씻어서 어떻게 먹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고, 하늘에서 살구가 쏟아져 내리는 광경만이 되살아온다.
놀이가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뒤뜰 툇마루 밑 끝에 사는 개의 밥그릇에 흙을 채우고, 텃밭 옆의 도랑둑에서 땅강아지를 잡아 그릇속의 흙에 묻으며 놀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오셔서 도랑 옆의 흙을 삽으로 파서 밭고랑 위에 뒤집으셨다. 퍼낸 흙에서 나온 마구 돌아다니는 땅강아지를 개밥그릇의 흙속에 담느라 나는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는지 모른다. 당시 나에게 아버지는 능력자였고, 종종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시는 공급자였다. 어머니는 돈을 잘 안 주셨지만, 아버지의 회사에 나가면, 당시로는 내가 모두 쓰기 힘든 돈을 주셔서 다 못쓰고 집에 가기도 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이처럼 부요하실 수 있다면, 하늘 아버지는 얼마나 더 풍성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지극히 섬세하시고, 놀랍게 풍성하시며,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자녀 삼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복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서 성숙시키시기에 능한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영육간의 결핍으로 침울하며, 실패로 우울하고, 병들어 신음하고, 낙심하여 슬퍼할 때가 적지 않다. 아픔과 고난은 우리의 개인생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조국의 정치, 경제 상황이나 남북한 관계의 딜레마, 미중무역전쟁을 통한 국제적 갈등, 선교지의 폐쇄적 정책으로 말미암은 복음전파의 제한과 선교사의 철수 그리고 타종교의 공격적 활동 등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능력에 있어서 빈약하고, 실천에 있어서 제약 가운데 있는 우리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와 다스림이 나타나기를 간구할 뿐이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사 64:1). 이사야의 기도는 열방이 각축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주의 이름이 높아지면서 인정되는, 하나님의 부흥이 나타나는 미래를 소망하는 기도이다.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믿음의 공동체 안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부흥이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 개인에게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주고 교회의 성장을 이루시지만, 단순히 교회의 숫자적인 변화나 자기중심의 인간적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다. 부흥의 외적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는 자기만족적, 성공주의적인 부흥의 추구라고 말한다. 진정한 부흥의 의미는 “다시 살아 숨 쉰다”는 말이다. 즉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다시 살아나다” 즉 소생(蘇生)이나 부활한다는 의미이다. 셋째로는 “다시 기력을 찾는다,” 곧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소성(蘇醒)을 의미한다. 이는 성령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방법으로 임재하셔서, 개인과 교회가 새 힘을 얻고 성령의 주장하심과 이끄심에 이끌려 생기를 얻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변혁적 갱신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같이 모두 성령의 역사이며, 이로서 교회가 새 힘을 얻고 복음의 전파에 힘쓰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부흥의 견인차 되는 성령님이 우리를 충만한 임재로 채우시도록,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 없는 부흥은 없다. 기도의 응답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보내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강력하게 임하심으로, 우리는 넘치는 영적 부흥으로 채워질 수 있다. 성령 충만은 우리가 회개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성령님은 말씀을 듣거나 찬양하는 가운데 내려오신다. 성령님은 교제하고 봉사하며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내려오신다. 성령님은 전도하고 선교할 때 내려오신다. 성령 충만은 영적 지도자에게 안수를 받을 때 이루어진다. 성령은 물세례를 받을 때 내려오신다. 값없이 주시는 성령의 은혜가 갈급하게 요구되는 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