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교회 침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두루 얽혀 있지만, 두 가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1. 먼저는 '교육전도사' 제도입니다.
사실 교육전도사는 공식적인 직책이 아닙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교회학교의 한 파트를 맡게 되는데, 이들을 가리켜서 교육전도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신학생은 교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닙니다. 신대원생의 경우 신학을 공부하는 목사 후보생일뿐입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신학생들에게 다음세대의 교육을 맡겼습니다. 그것도 일반대학 졸업 후 신대원 입학과 동시에 교육부서를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넘치는 교회학교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다음세대의 침체의 한 요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제는 다음세대의 교육도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절감하면서도 녹록치 못한 목회 상황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학교의 인원이 격감한 상황에서 이전의 방식이 계속 반복되어진다면, 다음세대 교회교육은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신대원 과정의 수업은 쉽지 않습니다. 신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음세대가 더이상 교육전도사의 시행착오나 실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 교육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교육전도사님들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왔으니까요. 현재 학부나 신대원 과정에 있으면서 교육파트를 맡고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여 교육부서를 봉사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한 신학생들은 총회적인 이슈에 한눈 팔지 말고 순교적 각오로 신학 공부를 해야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신학공부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통합에서는 작년 총회에서 '교육목사'라는 직제가 통과하고 노회의 수의과정을 거쳐 시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교육목사를 중심으로 교회 교육이 전문성있게 재편되기를 원하지만, 이것 역시 보편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요하고 제도적 정착이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2. 다음은 '목회학 박사' 과정입니다.
신대원을 졸업하면, 2년의 전임과정 동안 목사고시를 패스하면,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대원 과정이 목사가 되기까지 공식적인 신학공부의 마지막 과정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과정은 유학을 가서 신학자가 되려는 사람이나, 몇몇 제한된 분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건축과 신학 수요에 맞물려 신대원 이후 과정의 문호가 넓게 개방되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신학교에서 목회자들이 많이 배출되다보니, 목회자의 학벌 프리미엄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부응하여 생긴 과정이 '목회학 박사' 과정입니다. 유행처럼 웬만한 교회의 목사님들은 이러한 과정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형편은 목사님이 목회에 전념하여야 할 상황인데도 많은 담임목사님들이 '목회'보다는 '박사학위'를 선택했습니다.
국내의 신학교와 외국의 유명 신학교가 연계된 과정이면 더욱 멋있고 매력이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체성이 분명치 않은 신학교, 교육 내용이 부실한 목회학 박사 과정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성도들도 그런 과정이 어느 수준인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담임목사님의 가운이 달라집니다. 주일예배 때 성의 가운 양팔에 줄이 세 개 새겨진 박사가운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을 향하여, 심지어 하나님을 향하여 '나는 박사입니다.'는 무언의 메시지이니, 참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박사가운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이어서 교회의 부목사님들까지 목회학 박사 과정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연은 눈물겹습니다. 주일 사역이후 힘겨운 월요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를 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듦은 차치하고, 왕복 교통비와 식비만 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임 사역을 하면서 교회의 사택에 들어간 후, 가지고 있던 얼마의 전세금으로 학비를 충당하기도 합니다. 빚을 내어 공부하기도 합니다. 온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치열해지는 담임 청빙 경쟁에서 한 줄, 혹은 두 줄의 학력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부목사로서 목회학 박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목사는 일반적으로 자기목회가 아닙니다. 담임목사를 도와 목회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담임목사 청빙은 박사학위가 있는 부목사들이 우선 청빙되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력서에 한 줄 더 적기 위하여 신학 과정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개교회가 적합한 훌륭한 담임목사의 청빙을 위하여 온갖 조건과 기준을 제시하고, 상상을 초월한 구비 서류를 요구하고, 중직자들이 청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층면접을 하고, 온 교인이 동원되어 후보자 설교 콘테스트를 한다고 해도 좋은 목사님을 청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목회자의 인격이나 영적인 면보다는 학벌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목회학 박사도 모자랐는지 '목회신학' 박사과정이 생겨났습니다. 목회학 박사도 아니고, 신학박사도 아니고, 어중간한 목회신학 박사 과정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느 분은 몇년 전 목회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시골에서 매주 월요일 서울로 올라가 어렵게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인간승리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그 분은 서재의 몇 권 안되는 책들을 가리키면서 "목사님, 이 책이 몇천만원어치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새삼 놀랐습니다. 박사가 되기 위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서재의 두칸이 채 되지 않는 책이 박사과정의 교재와 참고도서의 전부입니다. 실제 박사과정의 수업 분량은 그리 많지 않으며 신학교의 재정적 기여도가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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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회자로서 공부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마땅히 목회자는 평생 공부해야 합니다. 꾸준히 독서를 해야 합니다. 신학의 공부를 계속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신학공부에 매달리고, 그 이면에 학위를 추구하고, 목회의 세상적 성공을 추구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만한 물질과 시간과 수고를 들여 그에 상응하는 유익과 열매를 얻고 있는지 깊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많은 물질과 시간, 수고와 정성을 목회 사역에 쏟아 붓는다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고 풍성한 목양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교회와 목회에 필요한 신학의 더 깊은 연구라기보다는, 박사 학위를 추구하고 그 학위로 자신의 몸집을 불여 조건이 좋은 큰 교회에 청빙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같은 현상을 적잖이 보아왔습니다.
오늘 교회가 원하고 교회에 필요한 분은 '바른 목사'입니다. '박사학위'가 아닙니다. 이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기도 합니다. 목회자의 관심은 언제나 '교회'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항상 '목회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불필요할 정도로 신학교에 기웃거리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신학교 교수들이 대형교회 청빙 광고를 눈여겨 보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교회 목회에 신학교 교수 수준의 신학적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학교 교수는 신학의 전문성을 가지고 후진 양성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힘들게 쌓아 올린 신학적 자산을 사장시키지 말아야하고 신학적 지평을 넓히는 그 일에 공헌을 해야 합니다. 신학교수들이 목회 현장에 뛰어드는 일이 한국교회와 신학의 퇴보를 의미한다고 하면 너무 과격한 말일까요?
오늘 목회자의 관심이 너무 분산되어 있습니다. 목회의 방향을 잃고 산만합니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백화점식으로 행사와 프로그램, 목회자료들이 넘쳐납니다. 목회 자료를 갖다주면, 아파서 몸져 누워있던 목회자도 벌떡 일어난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너무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목회 외적인 일에 너무 바쁩니다.
주어진 목양의 현장에 충실하면서 단순하게 '한영혼 사랑, 세계 선교의 비전'을 향하여 달려갈 수는 없을까요? 교회와 목회자가 건강하게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김원곤 목사(화곡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