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최근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3가지 진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치셨는가? " 만약 당신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면, 이 칼럼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나라에 재난이 낙치거나 자연재해, 테러 등의 공격이 발생할 때,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에 대한 개념은 종교 매체나 소셜미디어에서 항상 인기있는 주제가 된다.
누군가는 이같은 고통과 파괴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누군가는 인간에게 일부의 책임을 돌릴 것이고, 인간에게 전부를 돌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죄에 대한 대한 하나님의 불만, 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 인간을 향한 그분의 긍휼은 수세기 동안 논쟁의 주제가 되어왔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죄인들 앞에 서실 수 있는가?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성은 우리가 그분을 화나게 했든지, 그렇지 않든지 매우 인격적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화가 나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화나게 했거나 그분을 매우 심하게 공격했기 때문에, 이것이 위험 수위에 달하여 분노로 응답하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개념에는 이러한 우려가 깔려있으며, 이는 바뀌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매우 분명하다. 하나님의 분노는 우리를 직접적으로 향하고 있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우리가 잘못해서 지은 죄를 향해 있지 않다.
하나님은 절대 당신에게 화를 내시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사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1장 18절은 하나님의 분노가 경건치 않은 자들의 모든 불경건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분은 죄를 싫어하시지만, 죄인을 미워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노가 개인으로서 우리를 향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이를 극복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계속되고, 아무리 우리가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해도, 우리는 항상 이를 놓치게 될 것이다.
감사하게도 불완전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선물이 임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형태로 인간에게 오셨을 때, 그분은 스스로 분노를 비우셨다. 즉, 우리가 불복종할 때, 그분 안에 우리를 덮칠 만큼의 분노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기록은 자비롭게도 짧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러나 그분의 의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종종 간과한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에게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마지막 흔적까지 용서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때 모든 불의가 씻겨진다. 다만 일부 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에 대한 심판을 미루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기꺼이 우리의 죄에 근거하여 심판하실 권리를 내려놓으셨다. 심지어 우리가 저지른 불의한 일들을 기억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 못박혔다'(갈 2:14).
하나님의 진노와 자연적인 결과를 혼동해선 안된다
로마서 2장에서 바울 사도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결과는 하나님을 부당하게 대했거나 하나님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한 그분의 거룩한 처벌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행동과 결정의 자연적인 영향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미뤄지지만, 우리는 죄를 여전히 짓고 있으며 이를 면할 수 있는 핑계는 없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드러나기 위해 죄를 계속 지어야 하느냐고 묻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외친다.
우리의 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죄의 결과는 하나님에 의해 가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죄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은 비난과 처벌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그분과의 분명하고 정직한 관계로 다시 들어갈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파괴와 테러를 주관하신다는 중세적 개념은 '우리에게 항상 사랑, 자비, 은혜로 나타나시지만 결코 분노와 악의가 없으신' 하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의 승리(부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처럼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