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메시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으로 여겨지는데요. 이 말씀을 들은 한 힌두교인은 '영생'이라는 단어 때문에 예수님이 수준이 낮은 신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힌두교에서는 구원의 의미가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신의 생명'으로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요. 힌두교인에게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힌두교의 '천국과 지옥의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힌두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과응보의 개념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인도에서 아침에 나가보면 새나 개와 같은 짐승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생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부자 관원의 경우도 선을 행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도덕적인 관점에서의 구원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힌두어에서 '스와르그'와 '나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나락이라는 말은 한국어에서도 차용을 해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죠.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한 사람은 천국을 가고, 악을 행한 사람은 지옥을 간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죽음의 신 '야마'인데요. 불교의 염라대왕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야마는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과 악행을 판단하여 천국으로 보내든지 지옥으로 보내게 됩니다.
힌두교 뿌라나 문학에서는 지구를 포함한 7개의 천국과 지구 아래로 7개의 지옥이 있다는 우주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천국은 신들을 포함하여 천사들과 선을 행한 영들이 거하는 곳인데요. 영원한 것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곳이고, 그 지위에 따라 7개의 천국 중에서 위치가 결정이 됩니다. 수많은 종교적 분파에 따라 이러한 개념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통일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쉬누파의 개념에 따르면 가장 상층의 천국에는 비쉬누가 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옥도 힌두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리그베다에서부터 언급이 되는데요. '악의 장소'요 '밑바닥의 끝이 없는 구덩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한 죄인들이 사후에 고통받는 장소로서 뿌라나 문학에서는 이에 대한 개념의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류의 지옥이 발전하였는데요. 그중에 '따미스라'라는 지옥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곳인데 남의 재산을 빼앗은 자들이 밧줄에 묶여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면서 매를 맞고 고통받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천국과 지옥에서 거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합당한 보응을 받고 나면 다시 세상으로 환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힌두교에서의 구원은 '목샤'(Moksha)라는 말을 사용하는데요. 이는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영원한 신의 세계에서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나 천국을 설명할 때는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필요하게 됩니다. 또한 지옥의 심판이 여러 번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 오직 한 번밖에 없다는 점을 주의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죠.
천국이나 구원을 포함한 추상적인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고, 상대방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신중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개념을 잘 이해해서 그들이 정확하게 성경의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브라이트 리(Bright Lee)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