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란 인생의 출발지요 종착지입니다. 인생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삶의 마지막 이별을 하는 곳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요,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고, 삶의 행복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가족이란 조건없는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게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욕해도, 가족은 내 입장을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 주어서 나와 함께 하는 동행인입니다. 세상에서 시달리고 피곤해져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면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식당이 있다 하더라도 몇 번 먹으면 질립니다. 하지만 집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주문을 잘 못 해도 괜찮고, 반찬이 부족해도 괜찮은 편안한 식사가 바로 집에서 먹는 식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름답다는 관광지를 다 다니면서 감탄을 하더라도, 집처럼 편안한 곳은 없습니다.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휴식하기 가장 편안 곳, 안식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가족 경험은 그다지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조건없는 사랑을 받고 용서를 경험해야 할 장소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싸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족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족이란 무엇이고, 가정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인간을 가정에서 태어나고 하셨고, 성장하게 하셨는지 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 또한 가정에서 받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유교 집안이었고, 종교는 없었지만 심리적으로 불교가 가장 가까운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집안의 왕처럼 행세하셨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싶으면 어머니에게 시켰습니다. 유교의 문제점은 남성 중심이고, 연장자 중심이라서, 여성과 어린이 등 약자들이 나이 많고 강한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허리를 굽히고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겨주시는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고,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시는 분입니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약자를 먼저 배려하고 양보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장된 갈등 중 하나는 복음과 율법주의와의 갈등입니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소식입니다. 율법주의는 죄인을 정죄하고 혼냅니다. 가족은 상대방의 실수를 혼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하면 용납해주고, 다음에 잘 할 수 있도록 대화, 교육, 훈련을 시키면 됩니다. 팬티만 입고 돌아다녀도 창피한 줄 모르는 편안한 관계가 바로 가족입니다. 무장을 해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에 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교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비판과 정죄는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교만입니다. 실수하면 용서하고, 부족하면 채워주고, 연약하면 도와주고, 잘 하면 인정해주고, 늘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주며, 자존심 내려놓고 내가 먼저 섬기는 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임마누엘 아버지께 감사하며, 이기범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