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날 교회에서 어떤 성도님이 “제가 고민이 있는데, 혹시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하고 약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다가온다고 생각해보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한 가족이요, 이웃인 다른 성도의 이 요청에 금세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닌 ‘상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치 이 고민을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자리잡힌다. 그러나 어떻게 지혜 있게 말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성경 말씀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말과 접목하고 싶지만 바로 입술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며, 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상담은 언어에 민감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은 단순히 잘 들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제시한 문제를 가지고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상호작용을 통하여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사용하던 책상다리가 삐걱거리는 걸 알아차렸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그러한 상태에서, 책상다리를 고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고치는데 필요한 도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상담할 때에도 이러한 도구가 필요하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상담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상담의 도구 혹은 기술을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상담자의 자세, 적극적인 경청, 진실성,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자세와 배려, 등이 떠오를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자세와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이야기들을 선입견 없이 들으려고 하는 노력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모두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고 성격과 기질이 제각각이어서 다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와는 ‘틀리다’라는 마음보다는 ‘다르다’에 집중하여 지금 현재 하는 이야기에 그 사람의 유익성을 고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존중하며 침범하지 않고 선을 지키면서 예수님과 같은 청취자가 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쉽게 제안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크게 만들 수 있다. 문제 해결의 속도 보다는 방향을 파악하며 근본적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배려의 자세이다. 혹여 상대방의 이야기가 과장되고 포장이 된 것이어도,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진실하게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수면위로 떠오른 말의 이면에는 어떤 감정과 이야기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치 거울을 비추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진실성을 가지고 들어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담의 기술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에는 이렇게 진지하게 진정성 있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예수님께서 계셨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더 상담의 기술이 분명해질 수 있다. 그분은 최고의 상담가셨고 군더더기가 없으셨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예수님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분이 보여 준 상대방에 대한 진실성, 배려와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밑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결국 변화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상담 기술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상호작용을 이루며 관계를 맺는 사회 구조 속에 상담의 기술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훈련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보는 성장의 시간이 되어갈 수 있기를 스스로가 격려하고 응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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