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삐용~"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두주 전 도둑을 맞고 나서야 집에 알람을 설치했습니다. 뭐 대단히 잃어버릴 물건이 더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집에 들어와 괜히 가족들에게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손 탄 집은 자꾸 탄다고들 하시니 말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알람 작업을 하는 내내 이 말이 생각나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안일함을 꼬집을 때 이 말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리 외양간을 고쳤으면 소를 안 잃어버렸을 텐데 왜 꼭 소를 잃어버린 다음에 외양간을 고치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마치, 소를 잃고 난 뒤 외양간을 고치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라는 말로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소를 잃었으니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허물어진 외양간을 고쳐야 다시는 소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교회 표어를 '무너진 성벽을 재건합시다'로 정했습니다. 느헤미야 2장에 보시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읍을 돌아보고 돌아와 이렇게 말씀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느헤미야는 슬펐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예루살렘 성의 황폐한 모습을 볼 때, 그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여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말은 상징적인 말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불에 타고 수치를 당하던 때는 아직도 예루살렘성의 높은 성벽이 건재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벽이 무너져 수치를 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무너져 수치를 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불타고 무너진 예루살렘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에 무너지고, 또 음란에 무너지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옷을 찢으며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9년 한 해가 우리 모두에게 전환점과 같은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여, 다시는 영적 수치를 당하지 않는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 기도의 영역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습니까? 말씀의 영역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습니까?
'사후약방문'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죽었는데 그제서야 약 처방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죽기 전에 그 약을 먹어야 효험을 볼 수 있을 텐데, 죽은 뒤에 처방전을 받았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정말, 고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소를 잃지 않으셨습니까?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 외양간을 고칠 때입니다. 너무 늦으면,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무너진 성벽을 함께 재건하는 한 해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