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이방인의 때'에 관한 예언과 성취>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C.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방인의 때' 마지막 종결은 '재림의 날'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곧 '재림의 날'이 있기 전까지 이방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지배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가고 있다는 역사적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함께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실체적 회복이다. 그런 증거들은 정치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적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그런 영적 회복은 이스라엘의 독립 이후 지속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메시아닉 유대인교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정치적 회복
'이방인의 때'가 시작된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획기적인 대전환이 일어난 것은 1948년 5월 14일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독립이다. 이스라엘독립의 법적 근거는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에서 찬성 33개국, 반대 13개국, 기권 10개국으로 가결된 두 국가(유대인국가와 아랍국가) 분할독립안이었다. 이 안은 예루살렘을 어느 나라에도 소속시키지 않은 채 유엔이 직접 관할하는 국제도시로 규정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립을 선포하였던 1948년 당시 예루살렘 총 인구는 165,000명이었다. 그 중 유대인은 60%에 해당하는 100,000명이었다. 나머지 40%는 모슬렘(25%)과 기독교인들(15%)이 차지하였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역사적 의미가 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선호하였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주변이 사방으로 아랍지역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마치 아랍지역이라는 바다 위에 고립되어 있는 하나의 섬과 같았다. 그동안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해안지역에 위치한 텔아비브로부터 생필품을 공급받으며 살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독립선언과 함께 시작된 아랍과의 전쟁으로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도로가 차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위기를 극복한 인물이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벤구리온이다. 그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루살렘을 사수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의 노력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서부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전과를 얻었다. 독립전쟁이 끝난 후 1950년 벤구리온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수도로 결정하였고, 국회 크네세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행정부처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시켰다.
예루살렘 전체 통치권이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온 것은 1967년에 있었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의 결과였다.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6일 만에 전격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요르단으로부터는 요단강 서안지구와 예루살렘을,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0년 만에 예루살렘 전체의 지배권을 획득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시켜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하였다.
그렇다면 6일 전쟁으로 이방인의 때가 끝난 것인가? 물론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획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 성전이 세워졌었던 '성전산'지역만큼은 관할권을 모슬렘에게 넘겨주고 있다. 외관상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회복하였지만, 예루살렘의 핵심지역인 성전산의 실제적 관할은 여전히 모슬렘의 손에 남아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방인의 때'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예루살렘의 회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017년 12월 6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이제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런 발표의 근거로 현실과 역사를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현실'이란 실효적 지배를 지적한 것이고, '역사'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통일왕국의 수도로 정한 이후 이스라엘은 한 번도 예루살렘 수도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996년을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지 3000년이 되는 해라 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벌린 적이 있었다. 다윗 이후 이스라엘은 바벨론과 로마에 의해 두 차례나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는 비극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1948년 독립을 이루기까지 1900여 년 동안 전 세계로 흩어져 유랑민족으로 살아왔다. 그런 비극 가운데에서도 유대민족은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었다. 트럼프의 역사적 발표가 있었던 2017년 12월 6일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날은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가결되었던 1947년 11월 29일로부터 일주일이 경과한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주도하였던 미국이 70년 만에 예루살렘의 정치적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