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행복학 기초를 놓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없이는 철학의 역사를 논할 수 없듯이 소크라테스 없는 행복학 역사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공통 목적이 행복임을 밝힌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도 행복을 논했습니다. 그들은 행복이 가진 자들의 관심사라는 사실을 부각시켰습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행복이 모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아테네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식과 문화가 발달된 도시 국가였습니다. 도시 국가 아테네는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실행하였습니다. 물론 아테네가 취한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시민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민주(民主)의식이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아테네와 주변 도시 국가의 시민들 의식 수준이 상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아테네에서 인생의 지혜를 찾아 시민들을 계몽하였습니다. 그는 아테네 서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인품과 연마를 통해서 당대 아테네 젊은이들과 지식을 갈망하는 아테네 시민들의 스승으로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진리를 설파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발전된 것이 소크라테스의 행복론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행복론은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소크라테스는 행복이 보편적인 인간 삶의 목적이라는 명제를 세웠습니다. 당시 많은 철학전도사 소피스트들이 행복을 말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주관적인 행복을 말했습니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행복을 주창한 것입니다. 플라톤과의 대화록인《에우티데모스》에서 소크라테스는 “행복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행복추구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갈망이라고 가르칩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모든 인생의 궁극적 숙제입니다.
둘째로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정당하고 의롭게 추구되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덕(德)스런 행복을 강조합니다. 덕이 있는 행복입니다. 도덕성이 있는 행복입니다. 그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불행의 길로 접어드는 죄를 범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행복을 위해 선택한 죄는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용기, 절제 그리고 정의 같은 덕의 실천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끕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덕을 실천하는 도덕적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도덕적 삶이 행복으로 가는 입구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행복은 단순한 기분 좋은 상태나 운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좀 더 고상하고 중요한 삶의 가치입니다. 행복은 덕의 실천을 통해서 영혼이 맑아 질 때에 누리는 만족과 보람입니다. 그리스어로 행복이 “에우다이모니아”입니다. 좋다는 의미의 에우(Eu)와 정신이라는 뜻의 다이모니아(Daimonia)가 결합된 말입니다. 헬라어 행복이라는 말은 ‘선한 영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셋째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행복은 바른 지식에 근거한 행복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덕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덕과 지를, 악덕과 무지를 일치시킵니다. 인간이 덕을 실천하지 못해서 불행해 지는 이유가 지식과 교육의 부족 때문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지식이 부족하여 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정복했던 주변 부족국 국민들의 무지한 삶과 그 무지한 삶의 파괴력을 보면서 지(知)가 부족하므로 덕(德)이 부족하고 덕이 부족함으로 불행하다는 명제를 만들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행복을 살피면 낯설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행복론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른 지식의 습득, 덕이 있는 삶, 그리고 맑은 영혼의 소유가 행복프로세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궁극적으로 내면의 행복, 영혼의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논리적 비약과 편향적 해석이라는 비판을 각오하면서 소크라테스의 행복론은 지식이 성경적 지식이라면 기독교적 행복과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이런 정리가 가능합니다. “바른 (성경)지식에 근거한 바른 삶으로 거룩한 영혼을 소유한 삶이 참된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