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특별한 날입니다. 결혼 26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아침을 처갓집에서 맞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유학하고 목회한답시고,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 한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간밤에 늦게까지 운전을 해서 그런지 몸은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지만, 마음만큼은 장모님이 차려주신 추석 아침 상만큼이나 따뜻합니다.
후드득! 후드득! 고구마를 캐러 가다가 길가에 떨어진 밤을 보고 줍기 시작했는데, 지나가는 바람이 또 머리 위로 밤을 던져줍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심은 적도 없고, 물을 준 적도 없는데, 이 밤나무는 제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열매를 맺어주었던 것입니다. 신나게 밤을 줍는 아내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장모님이 한마디를 툭 던지셨습니다. "이거 다 미영이 아버지가 심은 거야..."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심었기 때문에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와 아내는 밤을 주웠던 것이 아니라 먼저 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줍고있었던 것입니다.
"올해 고구마 농사는 망한 거 같아. 지난 여름엔 비도 안 오고 우라지게 덥기만 하더니..." 하루 먼저 와서 고구마를 캔 손위 처남도 볼멘 소리를 하더니, 함께 고구마를 캐는 손위 동서도 이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는 곳은 일산이지만 추석이면 어머님을 도와 고구마를 캐곤 했으니 올해 작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고구마를 캐는 제겐 그냥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좀 많이 안 나오면 어때? 이거라도 나오는게 감사하지..."
3일째 고구마를 캐고 나서야 형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농사꾼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린 다리를 주물러 가며 호미질을 했는데도 열매를 얻지 못했다면 허탈하고 짜증나는 것이 맞는 것이었습니다. 취미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열매가 없어도 별 상관이 없겠지만 그 땅에 모든 것을 건 농사꾼이라면 열매가 없는 땅에 분노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눅 13:6 이하의 말씀이 경험적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 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번 추석,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주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영적 줄기에는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어 있습니까? 열매 없는 우리를 위해 금년도 참아 달라고 탄원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가을, 말씀과 깊은 교제를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