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윤 박사가 지난 8월 25일 제25회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의 동질성과 이질성-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총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의 동질성과 이질성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Ⅰ. 서론
기독교는 초기 교회시대부터 토라-모세오경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적 창조론을 가지고 있었다.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에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발표한 이후, 기독교는 고전적 창조론을 가지고 진화론과의 논쟁에 빠져들게 되었다. 소비에트연방의 식물생리학자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이 1936년에 『생명의 기원』을 출판하고, 생명은 물질의 화학적 작용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오파린은 화학적 작용의 산물인 최초의 생물이 다윈의 진화 메커니즘에 의해 현재의 생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진화론은 철저하게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창조론과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심지어 오파린은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오파린의 장담은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창조의 교리를 방어하기 위해 진화론에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진화론자들의 과학적 논리에 밀리면서 점점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은 유물론적 진화론, 화학적 진화론, 양자물리학적 진화론의 4단계로 발전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발전하는 진화론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창조론 진영에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의 등장은 하나님이 보낸 지원군으로 여겨졌다. 만약 창조론이 진화론에 진작에 승리했다면, 지적 설계론은 역사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창조론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 설계론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창조론 정도로 알고 있을 뿐, 더 이상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지적 설계자가 하나님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믿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는 것이고, 유신론자들은 나름대로의 창조론에서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은 창조론과 동질성도 가지고 있지만, 이질성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동질성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비판하면서 창조자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질성은 전제된 동질성의 이면(裏面)에 가려져 있다. 두 가지 동질성에 가려진 두 가지 이질성을 보면, 진화론의 비판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차이에서, 창조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정체성과 관련해서 나타난다. 이 에세이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된 이런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지적 설계론과 창조론의 관계가 미래에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해볼 것이다.
Ⅱ. 진화론 비판
1. 전통적 창조론의 진화론 비판
기독교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이 태초에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그 가운데 생물들을 종류별로 창조하셨고,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고전적 창조론의 핵심 내용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최초의 단순한 원시 생물이 점진적 변이를 거쳐 복잡한 고등 생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주장은 특히 생물이 종류별로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성경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었던 기독교의 입장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의 역사에 대해서는 청교도 이민으로 건국된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동향을 살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1860년에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1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예해방 문제로 남북전쟁(1861-1865)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미국 기독교도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치열했던 남북전쟁이 끝나자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진화론 찬반 논쟁이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당시 미국 기독교인들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사용한 무기 역시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고전적 창조론이었다.
1863년 미국에서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25)에 의하여 설립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도 열렬한 반진화론 그룹이었다. 안식교의 열성 신자 조지 맥그리디 프라이스(George McGready Price, 1870-1963)는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다윈의 진화론에서 발견한 약점은 생물의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프라이스는 노아 홍수를 환상으로 체험했다는 화이트의 설교를 듣고, 노아의 홍수를 이용하여 지질학의 오랜 지질연대를 깨뜨릴 수 있다고 착안했다. 프라이스는 영국의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 주교가 그의 『연대기』에서 제안한 창조연대를 믿고 있었다. 그것에 의하면 우주는 BC. 4004년에 창조되었고, 노아의 홍수는 창조 후 1656년(BC. 2349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프라이스는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는 오랜 지질연대를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질학이 오류라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라이스의 증명 방법은 BC. 2349년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에 의해 전지구의 지질이 단번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동일과정설에 기초한 오랜 연대의 지질학이 오류로 증명되고 진화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프라이스는 1923년에 그의 주장을 설명하는 『신지질학』을 출판했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프라이스의 주장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그가 책에 쓴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랜 지질연대를 주장하는 주류 지질학계로부터 즉각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존 위트콤(John C. Whitcomb, 1924- )이 반진화론 입장에서 프라이스의 주장을 지지하는 논문을 써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위트콤은 수력학자인 남침례교 신자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1918-2006)를 끌어들여 그의 박사학위 논문과 프라이스의 이론을 확대한 『창세기 홍수』를 1961년에 출판했다(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창세기 대홍수』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 역시 미국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고무된 헨리 모리스는 미국에서 창조과학연구소(ICR: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를 설립하고, 그의 창조과학적 창조론을 세계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모리스는 그의 창조과학에 동의하는 창조론자들을 모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현재에도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전 지구적 노아 홍수론을 무기로 진화론 반대 운동에 선봉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창조과학적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보면,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의 핵심 쟁점을 겨냥하지 않고, 프라이스처럼 지질학의 지질연대만 공격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창조론은 고전적 창조론과 프라이스와 모리스가 발전시킨 창조과학적 창조론을 통칭하는 말이다.
2. 전통적 창조론의 실패
전통적 창조론은 진화론에 대해 핵심을 벗어난 비판으로 성공할 가능성조차 없어 보인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선택 -생물이 점진적으로 변이를 거쳐 진화하는 메커니즘(mechanism)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진화론 비판은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이 오류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고전적 창조론은 인간이 원숭이의 자손일 수 없다는 주장으로 비판하고,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노아의 홍수를 끌어들여 지질학에서 주장하는 오랜 지질연대를 반박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까지 창조과학적 창조론에서 오랜 지질연대를 반박하기 위해 제시하는 과학적 자료는 모리스의 『창세기 홍수』 이론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이 우주의 나이를 겉보기에는 오래된 것처럼 창조하셨지만, 사실은 약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들어 있다. 현재 지질학계는 지구 나이 46억년 설을 지질연대의 토대로 삼고 있다. 그것은 물리학적으로 지구 암석과 월석, 그리고 운석의 생성 연대를 분석한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과학적 분석의 결과를 비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반론하는 것은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창조과학적 창조론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동안, 진화론은 현실적으로 과학계의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기독교의 온갖 지원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공교육에서도 배제되고 말았다. 과학적 이론을 반박하려면, 그 이론의 방법에 따라 검증하고 오류를 발견하여 반박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적 이론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또는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근거로, 반론해서는 진화론을 굴복시킬 수가 없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법칙을 서술한 책이지 물리법칙을 서술하는 과학책이 아니다. 책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경의 해석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토라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고집했던 로마가톨릭처럼,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학 발전의 힘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우주탐험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과학은 미국에서 초강국의 문명사회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과학 발전이 국가의 경쟁력임을 입증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학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주장하는 기독교의 창조과학적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전체를 무지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반대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공공 기관에서는 모든 창조론 운동이 금지 당했고, 학교에서는 과학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공공 의식(儀式)에서 선서의 효력을 보증하던 성경의 사용이 폐지되었다. 창조론을 다시 공교육기관에서 가르치게 하려는 기독교의 노력은 연방대법원에 의해 모두 좌절되었다. 학교에서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가르치게 하려던 최후의 도전까지 끝내 실패했다. 그 결과 유신론을 믿는 현대인들도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부모를 따라 교회를 잘 다니던 학생들도 대학 입시를 준비할 무렵에는 이를 핑계로 교회를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진화론 반박에 성공하지 못한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자들은 이런 현상을 다른 이유로 돌리지만, 냉정하게도 현실은 그렇다는 것이 사실이다. (계속)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