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 발자국은 대부분 먹이를 찾아나서는 발자국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가는 발자국도 아니요, 이웃에게 먹이를 나눠주려고 가는 발자국도 아닙니다. 자신과 새끼의 먹이를 찾아 떠나는 길입니다. 인간은 수 만가지 종류의 길을 갈 수 있는 선택이 있지만, 그 길의 끝에서 구원의 길이었는지 멸망의 길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의 길이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 병사들이 미국 병사들을 죽이기는 해야겠는데 총알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다가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 미군 포로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기차간에 포로들을 다 집어넣고 며칠을 굶겼습니다. 그리고 빵 하나를 던져주면 그 빵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서로를 죽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 병사가 그 빵을 받았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그 빵을 보고 달려들었습니다. 이 때 먼저 빵을 받았던 병사가 손을 높이 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 성찬식을 합시다. 이 빵 하나로 다같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이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성찬식에 참여한 미군 병사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참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교회에 젊고 똑똑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 것이 따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보다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성직을 버리고 정계로 진출하여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야심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의 본심은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앙이 약해지고 교회와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사랑했던 친구들은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만나서 대화도 했고, 편지를 써서 하나님과 멀어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명심에 젖었고 사회적 활동에 깊이 개입한 이 목사님은 더 많은 정치적 권력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주일에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불신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술에 만취되어 집에 돌아오자 세 살 난 딸아이가 쪼르르 따라 오더랍니다. "아빠, 저 글을 읽을 줄 알아요~." "그래? 한 번 읽어보려무나~." 비록 술에 취했지만 귀여운 딸 아이가 책을 들고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딸은 조그만 손에 성경책을 펼쳐 들고 또박 또박 글씨들을 읽어 나갔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마태복음 22:37-38) 딸 아이는 계속해서 성경책을 읽어나갔지만, 이 아빠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 아빠는 딸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서재로 가서 문을 잠그고 한참이나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처지에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밤에 그는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은 한 순간에 짐승같은 잔인한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봉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으로 버리셨고, 이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이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길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