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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5장 1-27절 강해 

요절: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7절)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징계가 죄로 인하여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훈련하기 위해서 징계를 주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아도 여기에는 징벌의 성격보다는 훈련의 성격이 강합니다.

욥은 지금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여 연약한 육신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욥에게 겸손의 훈련을 시키고 은혜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 죄가 없는데도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사람은 정말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욥이 징계를 받는다고 말하면서 욥을 은근히 정죄하고 있습니다.

1. 욥은 죄로 재산을 잃은 것은 아니다

1-5절에 보면 엘리바스는 욥에게 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라고 합니다. 그가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라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욥의 기도를 듣지 않는 이유는 욥이 분노하고 시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욥의 죄에 대한 아무런 팩트도 없이, 다만 욥이 고난당한다는 것을 근거로 욥이 시기하고 분노하는 죄를 지었다고 정죄합니다.

엘리바스는 욥과 같이 미련한 자가 뿌리내리는 것을 보고 그 집을 당장 저주하였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나무가 튼튼히 뿌리를 박고 무성해 가는 것처럼, 악인이 종종 현세에서 번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뿌리가 뽑히고, 집이 순식간에 망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합니다. 욥이 죄악으로 현재 나무처럼 뿌리가 뽑혔다고 말합니다.

악인의 자녀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성문 또는 대로에서 부당한 처사(공동 번역, 몰매)를 당한다고 합니다. 악인의 자녀는 재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구해 주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이 추수한 것은 굶주린 사람이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가시나무 밭(덫)에서 자란 것까지 먹어 다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목마른 사람이 그의 재산을 삼켜 버린다고 합니다.

욥의 자식들이 대풍을 만나서 죽은 것도 욥의 이런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재산을 잃은 것도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욥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막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이 죄로 재산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2. 욥을 정죄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6-11절에 보면 엘리바스는 재난은 티끌이나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재난은 인간이 스스로 죄를 지어서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흙으로 만든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재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불꽃이 위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고난은 인간 자신의 죄 때문에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인생은 죄로 다 고난을 받는다고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 속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권면 속에서 욥을 은근히 질책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비를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십니다. 메마른 땅과 밭이 비를 받아 소성하듯, 인간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역전의 명수가 되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겸손하게 교만의 죄를 슬퍼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욥이 지금 고난을 받고 있을지라도 겸손히 하나님을 찾으면, 욥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욥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회복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3. 욥에게는 책망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12-16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시며, 그들의 손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지혜로운 자는 자기 계략에 빠지게 하십니다. 악인은 자신의 지혜로 어떤 일을 공교히 도모하나 결국 그 동기의 사악함으로 인해 패망하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교활하다고 은근히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 교활함으로 욥이 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낮에도 어둠을 만나고 더듬기를 밤과 같이 다닌다고 합니다. 악인은 늘 불안한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종국에는 주의 진노로 그 존재의 근거마저 상실하고 만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구출하여주신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적들의 칼날 같은 입과 억센 손아귀로부터 구출하신다고 말합니다. 비천한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희망을 가지지만, 불의한 사람은 스스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교만하여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욥이 겸손하면 소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욥이 교만하기 때문에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이제 욥이 겸손해지면 하나님이 그를 높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욥은 교만으로 낮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신뢰하고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욥을 낮추신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시는지 증거해야 합니다. 그 고난을 참고 인내하도록 소망을 심어야 합니다.

4.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17절)."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자가 징계하시는 것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므로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여기서 욥의 고난을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연단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러한 연단을 영구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질병(18절), 환난(19절), 기근과 전쟁(20절), 비방과 조롱(21절), 멸망과 기근(22절) 모두가 하나님의 연단으로서 일시적인 것이니, 욥이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인내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런 권면은 옳은 것입니다(히 12:5-6).

우리는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나아가고, 더욱 하나님의 소망에 불타야 합니다.

5.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않는다

18-21절에 보면 하나님은 채찍으로 때려서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서 치료해 주십니다. 상하게 하시다가 고칩니다. 욥의 질병이 하나님의 징계의 일환이나 욥이 그것을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받고 회개하면 여섯 일곱 가지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징계를 달게 받는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기근의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징계를 받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고대인들이 겪었던 가장 곤혹스러운 위협에서부터 욥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욥이 받는 중상, 비방에서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죄의 징계를 받을 때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여주십니다. 그를 치료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회개하면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로 징계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욥은 죄로 징계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욥의 육신을 단련하고 계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도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너무나 욥을 사랑하시고 신뢰하셔서, 징계하시고 있다고 도와야 합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6. 징계를 받으면 복을 주신다

22-27절에서 엘리바스는 욥이 징계를 잘 받으면 욥은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과 돌과도 평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징계를 잘 받으면 밭농사가 잘되어 풍족한 수확을 거둘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당시 팔레스타인에 육축과 인명에 대한 맹수의 위협이 흔했던 시대에 욥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22절).

그는 인간의 타락으로 와해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새롭게 회복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메시야의 도래로 완성될 새로운 창조 질서를 말합니다. 욥이 징계를 받으면 모든 자연이 욥을 도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욥이 집에서 평안하고 재산을 풍요롭게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욥의 후손들도 땅의 풀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징계를 잘 받으면 욥은 장수하다가 무덤에 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믿음으로 살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범사에 복 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다가 복 받은 사람이 재앙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살지 않아 재앙을 받는다고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엘리바스가 욥의 고난을 징계로 인식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징계가 죄로 인하여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군인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듯, 의대생이 의사가 되기 위해 고난을 받듯, 로스쿨 학생이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도 있습니다.

죄로 인한 고난 역시,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사랑으로 위로하고 소망을 심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자비의 하나님을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