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고아 출신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독주회를 하는데 권위자가 되고 싶어서 자기가 유명한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의 제자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리스트가 그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리스트를 찾아가 거짓말을 고백했습니다. 리스트가 말하기를 "거짓말은 잘못이다. 사과하고 잘못을 구하니 용서한다. 연주를 해 보라." 그리고 몇 군데를 시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지금 당신에게 짧지만 레슨을 해 주었다. 그러니 당신은 이제부터 리스트의 제자다. 마지막 부분은 학생이 아닌 스승이 연주할 것이다." 성황리에 독주회를 마쳤다고 합니다.
속인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리스트가 그를 거짓말 장이로 정죄하고 폭로했다면, 그 사람은 음악계에서 매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로 묻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유 없는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거짓을 거짓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애를 써 도와주고 품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서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랬기에 매장될 사건이 훈훈한 이야기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은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공로는 다른 겁니다. 은혜는 "가치를 부여"하는 반면에 공로는 "가치를 추구" 합니다. 그래서 공로는 구제를 통하여 내가 의로워 지지만. 은혜는 구제 받는 사람을 세워주게 됩니다. 그리고 공로는 내가 훌륭해 지지만, 은혜는 상대를 훌륭하게 만듭니다. 명의라고 이름난 편작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명의라고 칭찬을 하자 그는 형들이 진짜 명의라고 말합니다. 자기는 죽기 전의 사람을 만나 고쳐줌으로 죽을 자를 살린다는 소릴 듣지만. 형들은 병이 나지 않게 초기 단계에서 병을 잡아버리는 의사이기에 사람들이 고마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에게 은혜는 자기 잘남 속에 묻혀버리지만. 공로는 천박한 사람 들 속에서 인정받는 유치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주님으로 항상 나의 가치를 높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로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시고, 죄인에서 사명 자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내 가치가 달라지고 내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남 세워주며 남의 가치를 높이며. 격려하는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독 뿜는 삶에서 축복을 베푸는 삶 그게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