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에,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설교단에 오르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한 유명 교회의 담임이 되었지만, 소위 말하는 '세습'으로 후임이 된 까닭에 적지 않은 교인들에게 심한 반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택에 침입한 괴한 3명으로부터 '교회를 떠나라'는 말과 함께 심한 구타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교회당에 입장할 때 뿐 아니라 축도를 마치고 교회당을 떠나갈 때에도, 늘 까만 양복을 입은 보디가드들을 대동했습니다. 그 교회를 출석하고 있던 한 지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아니라는데, 도대체 누구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1940년 2월 5일 주일, 평양 산정현교회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신사 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시던 주기철 목사님이 잠시 석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평양 대동과 선교리의 3개 경찰서 고등계 소속 형사들이 배석한 가운데 목사님은 2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5종목의 기도'라는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감옥에서 이런 기도 제목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로우니 자신도 주님의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이 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단번에 겪는 고난은 이겨내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1년, 5년, 10년을 견뎌야 하는 고난은 자신과 같은 약졸이 이기기 힘들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셋째, 노모와 처자와 교우들을 주께서 지켜 주옵소서. 늙으신 어머니와 병든 아내, 어린 자식들과 불안해하는 양떼들을 주님께 맡기고, 인간의 정에 매이지 않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으로 태어나 행하여야 할 의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를 지키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옥중이나 사형장에서 목숨이 끊어질 때 당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주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많은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고춧가루를 푼 뜨거운 물을 코에 붓는 고문으로 식사는 커녕 숨쉬기 조차 힘든 지경이 되셨고, 알코올에 적신 심지를 요도에 쑤셔 넣어서 소변을 볼 때마다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고문했던 고등계 형사들이 보는 앞에서 주 목사님은 다시 일사각오하며 이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버리고 사는 것은 죽는 것이요 예수를 따라 죽는 것은 정말 사는 것입니다...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계십니까? 왜 그 싸움을 싸우고 계십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에 관한 싸움이요, 이기적 자아를 이루길 원하는 내 안의 어둠과의 싸움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싸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살기를 위해 싸우지 말고 잘 죽기를 위해 싸우시길 바랍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