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감정이 풍성해지면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이 소용돌이치게 되면 불행을 느낍니다. 이 말은 인간의 감정은 환경보다 행복감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이렇게 행복에는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수요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정의 수요를 채워주지 않으면 배고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수요가 있는 곳에는 가짜가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원하다 보니 가짜가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수요도 가짜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짜로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야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정이 가짜를 추구하게 되면 병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충동과 감동 때문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의 구별은 뚜렷합니다. 사탄이 주는 것은 충동이고, 성령이 주는 것은 감동입니다. 충동은 일방적이고 자극만할 뿐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인격적이고 소통이 가능합니다. 서로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감동에는 성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정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기쁨입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외칩니다. 기뻐하는 인생보다 강한 인생은 없습니다. 바울은 지적인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감정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말들을 보면 그는 불굴의 남자요, 의지의 사나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감정의 영역에 서는 바닥을 쳐야 마땅한 일인데 예상이 상상외로 빗나갔습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외쳤습니다. 바울의 환경과 상황이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괴로움을 더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저질 인간들 속에 있으면 행복감은 사라지는데 바울은 여전히 기뻐합니다. 그것은 절대 기쁨의 비밀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의 주도권을 하나님이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하나님께 있으면 기쁨을 빼앗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중심이 감정의 중심에 내가 있으면 흔들리게 됩니다. 열심히 헌신하자 외칩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해야 기뻐합니다. 그러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됩니다. 이러면 됩니다. 기쁨이 무너지는 이유는 자기애, 자아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에 절대 기쁨의비밀이 있습니다. 내가 망하면, 내가 쇠하면, 기쁘게 살게 됩니다. 이상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깨 힘 빼고 내려놓고 사는 겁니다.
[김병규 칼럼]내가 망하고 쇠하면 기쁘게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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