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데살로니가 서쪽 18마일 지점에 베뢰아(Berea)라는 도시가 있었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는 중 유대인들의 핍박이 너무 심해 잠시 베뢰아 성으로 피신했었다.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신사적인 사람들이었다(행 17:11). 성경 기록을 보면 '너그러웠다', '고상한 성품을 가졌다' 또는 'received Paul's message with enthusiasm'으로 표현하고 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고상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의 말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바울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고상한 성품을 한국적 표현으로 하면 '선비 정신' 또는 '양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청교도 정신', 유럽의 '기사도' 또는 'gentlemanship',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 중국의 '군자'나 '대인'이란 말도 비슷한 말들이다. 이는 지위의 높낮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인격과 품격', '인간다움', '예절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으로 ①빚 없이 3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고 ②월수입 500만 원 이상이며 ③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소유하고 ④예금 잔고가 1억 이상 있으며 ⑤마음 놓고 1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니까 국민의 70% 이상이 중류에 못 미친다는 좌절과 낙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 선비들의 기준은 이러했다. ①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의 전답이 있고 ②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이 각각 두어 벌 있으며 ③서적 한 시렁과 거문고 한 벌이 있고 ④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⑤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하며 사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중류 인간 기준도 괜찮다. 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삶의 질)에서 제시한 것이다. ①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②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③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④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하나는 만들 수 있어야 하고 ⑤'공분(의로운 분노, 저항)'에 의연히 참여하고 ⑥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을 들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영국의 신사도(중류 인간 조건)에서도 ①fair play를 할 것 ②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③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 ④약자를 돕고 강자에 대응할 것 ⑤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인들도 신사도의 기준으로 ①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②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③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④정기구독하는 비평 잡지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선비론을 알아보자. 성리학의 통치 철학은 법치의 패도정치(覇道政治)가 아니라, 덕치의 왕도정치(王道政治)다.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백성을 포용하는 인간화 작업을 중시한 것이다.
그리고 모범 인간(선비)을 학예일치형 인간으로 보았다. 학문으로는 전공과목인 文, 史, 哲로 이성을 훈련하고 예술로는 교양 과목인 詩, 書, 畵로 감성을 훈련하여 올곧은 지성인(全人)으로 길러 공맹(孔孟)의 도리를 실천케 했다.
이러한 선비가 수기(修己), 치인(治人)을 닦아 대부(大夫)가 되고 학자관료로서(士大夫) 공직을 맡게 하였다. 원로사학자 정옥자 교수는 선비의 덕목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①외유내강(外柔內剛): 겉으론 부드럽고 안으로는 소신이 뚜렷한 gentlemanship ②청빈검약(淸貧儉約): 권력을 가져도 재화를 탐내지 않는 simple life ③박기후인(薄己厚人):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한 포용력과 겸손 ④억강부약(抑强扶弱): 강자에겐 당당하고 약자는 보듬어 안는 도덕성 ⑤선공후사(先公後私): 공적인 것을 먼저하고 개인적인 것은 나중에 하는 봉사정신.
가정의 부모나 직장에서의 몸가짐, 더 나아가 각급 공공기관의 지도급 공직자들, 특히 대통령을 포함한 장차관, 국회의원, 법조인들은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므로 응당 그들의 사람됨(人性)과 처신하는 삶의 모습, 국사를 다루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한 나라가 복 받았다는 증거는 국토 면적이 넓다거나 지하자원이 풍족한 것보다, 나라를 관리하는 올곧고 헌신적인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것이라고 본다.
오늘 우리나라 국민은 이 복을 받았는가? 현존 국가 지도자들에 대해 감읍하고 있는가. '저들이 나라 살림 맡아 수고하고 있는데 몸살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금산 가서 홍삼이라도 사다 달여서 드려야 되겠네!' 하는 심정인가 한 번 생각해 본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