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현대 교회가 각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위기들은 교회 지도자들과 또 그들을 양성하는 신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도 대다수가 동감할 것이다. 미국의 한인 신학교육이 처해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본지는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교(mbts.edu)의 박성진 학장과 이 문제를 놓고 세 번째 대담을 진행했다. 이번 대담에서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속에 신학교육과 목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드웨스턴은 미국 지도의 정중앙에 있는 미주리 주 캔사스 시티에 있다. 미국 한복판 백인 위주의 지역에 있는 미국 신학교에서 아시아부 학장을 맡아 한국과 아시아의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박 학장은 미국 최대 교단인 남침례회(SBC) 6대 신학교의 학장들 가운데 유일한 한인이기도 하다. 그는 달라스신학교에서 신/구약학으로 Th.M. 학위를 받았고 히브리유니언칼리지에서 고대근동학과 비교셈족언어학으로 M.Phil.과 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구약학 복음주의 학술지인 JESOT(Journal for the Evangelical Study of the Old Testament)의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각종 학술지에 이스라엘과 우가릿의 종교 연구와 구약 해석학, 그리고 맛소라 학파의 강세 관련 논문을 주로 기고하고 있는 신진학자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그러나 개념조차도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은 전기동력으로 인해 발생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 제어에 따른 생산 자동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이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발달한 개별 산업들이 융합돼 지능산업화 되는 것으로, 지난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제시된 용어다. 쉽게 말해서, 3차 산업혁명의 키워드가 정보화였다면,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지능화다. 현재 빅데이터 통계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무인 운송수단(무인 자동차, 아마존의 무인 배송 시스템 등), 3D 프린팅, 그리고 나노 기술 등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로 알려져 있는데 이 기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던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에서 세계 최고의 기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둑만큼은 인공지능도 정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뇌를 모사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가진 알파고는 딥러닝을 통해 인간의 인지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초지능적 존재임을 증명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실생활의 모든 정보를 온라인화(O2O; Online to Offline)해서 사용자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스마트 홈이 대표적이다. 스마트 홈 시스템에 장착된 컴퓨터는 사용자의 생물학적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사용자가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사용자의 몸에 장착된 스마트 밴드나 스마트 워치를 통해 심장박동 및 체온을 측정하여 중앙 컴퓨터에 자료를 제공하고 중앙 컴퓨터는 사용자가 최적의 환경을 느낄 수 있도록 에어컨의 풍속 및 풍향, 조명의 강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요약한다면, 공간 속에 생활하는 인간과 주변 사물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하는 초연결성, 통합된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하는 초지능성, 분석된 패턴을 바탕으로 각 개인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시할 수 있는 예측가능성의 시대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현 사회에, 목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상하는가?
4차 산업혁명은 소비자의 욕구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 파악하여 즉각적으로 제품에 반영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구조를 가져올 것이다. 다른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결국 소비자의 욕구가 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빅데이터 통계 기법이 사용될 것이고, 이를 최대로 만족시키기 위해 연관된 기술들을 융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차별성은 기술의 자율적 판단와 대상의 개별적 만족에 있다. 3차 산업혁명이 자동화로 인한 대량생산에 초점이 있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개별적인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최대로, 그리고 다각적으로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있다. 3차 산업혁명이 기성품의 대량생산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맞춤품의 개별화된 생산이다.
이런 4차 산업혁명은 노동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의 최신 설문조사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이 귀하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응답자들은 ‘이미 위협을 받고 있다’(18%) 또는 ‘가까운 미래에 위협할 것’(57%)이라고 답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실제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아마존과 같이 물류 작업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분야에 이제는 로봇이 투입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일자리의 잠식은 곧 대다수 생산노동계급의 잠식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대다수 사람이 경제적으로 빈곤에 처해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될 수 있다.
목회에도 많은 도전이 도래할 것이다. 목회에 있어 중요한 변화는 세대 간의 골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1세와 2세 간의 소통의 문제로 고민하는 한인교회들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기술 문화에 1세대의 괴리감을 증폭시킬 것이고 개인화된 기술 문화에 빠져있는 2세대의 고립을 가속시킬 것이다. 또한, 가상현실을 이용한 새로운 유형의 교회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와 비생명체와 같이 기존의 이원적인 경계가 기술의 자율화로 파괴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면,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논의가 새롭게 제기될 것이다. 알파고는 인간의 입력이나 개입이 없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바둑의 다음 수를 선택하였다. 새로운 영역에 이런 자율적인 판단을 할 알파고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율적으로 내린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도덕적 고려를 해야 하는가? 이들의 자율적 행동이 해악을 초래할 수도 있다면, 이들에게 도덕적 감수성과 책무성을 어떻게 부여할 수 있겠는가? 인간을 규정할 때 많이 등장하는 지·정·의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지적, 의지적 영역을 이미 넘어섰고 이제는 감성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과 매우 유사한 인공지능의 대두는 매우 복잡한 윤리적 도전의 세계로 우리를 몰아갈 것이다.
-사회의 변화는 교육에도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가?
교육에도 기존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다. 암기 위주의 교육방식은 더 이상 가치 있는 교육으로 여겨지지 않고 토론과 창의성 위주의 교육방식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즉 ‘거꾸로 교육’(Flipped Learning)이 교육 현장에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학교 교육은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서 복습하고 다시 학교에서 평가하는 것이지만, ‘거꾸로 교육’은 집에서 학습하고 학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를 토론하고 더 깊이 있게 논의하는 교육이다. 지식 정보의 단순 축적보다는 지식의 평가와 활용이 더 중요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 맞춤형 온라인 수업이나 협업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마도 미래에는 지식을 전수하는 교수보다는 해당 지식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코치라 부르게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이런 변화 속에 복음주의 신학 교육과 목회는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야 하는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학 교육과 목회의 ‘성육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복음주의 신학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석의적으로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물론 이런 초점은 지속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성경이기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신학자와 목회자는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 초점을 흩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각화하여 다초점으로 성경을 기록한 저자의 의도와 성경을 읽는 독자의 상황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월터 브루그만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성경 본문과 성경 뒤(성경의 배경을 의미)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 앞(독자와 현대 상황)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는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일상 삶을 이해해야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석의의 거탑에만 갇혀 있는 목회가 아니라 광장으로 나온 목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머무신 것처럼, 신학 교육과 목회도 성육신화 되어 성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2-3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 말씀의 시대적 적절성을 유지할 수 있고 ‘살아있는 말씀’의 의미가 현대를 사는 성도들의 삶에 더욱 부각될 것이다.
특히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등을 통해 배태되는 무형의 디지털 세계관은 현실(reality)이 무엇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돈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간 간의 소통은 더욱 단절될 것이고 인간과 디지털 세계와의 소통은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지만 사회적, 종교적 인간 본연이 느끼는 소외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럴수록 성도들의 파편화된 삶 속으로 들어가는 성육신화의 시도는 더욱 중요하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유기체적 공동체에 대한 실제적 조명과 적용이 다시 부각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신학 교육 방법론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미국 고등교육위원회는 2030년까지 미국 고등교육의 40% 정도를 온라인 교육이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실제로 미국 대학교의 온라인 교육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고 신학교도 온라인 교육이 대세다. 최근 신학교마다 학생이 줄고 있어서 재정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학교 건물을 관리, 유지해야 하는 부담도 매우 크다. 온라인 교육은 이런 재정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에 강의실 위주의 교육을 선호했던 신학교에서도 이제는 온라인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 기술이 온라인 교육에 접목됨에 따라 마치 강의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발전했다. 가상현실 기능을 사용한 성지순례는 이스라엘이나 터키의 고고학 현장을 직접 가보지 않아도 지리적인 배경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또한, 성경 석의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교육의 단점도 적지 않지만, 대세인 온라인 교육으로 수준높은 신학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명하다.
-목회자들에게 조언한다면?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 전반을 광범위하게 바꾸고 있고 성도들은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과학의 발전 속도를 신학 교육이나 목회가 따라갈 수 없는 시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정·의 가운데 지적, 의지적 영역은 이미 인간을 따라잡았고 정적 영역도 머지않아 인간에 가깝게 모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모사는 인간의 감성까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지닌 영적 세계는 인공지능도 모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여기에 목회의 중요성이 있다.
목회의 기초를 제공하는 신학 교육도 원문 분석이나 주해, 고대근동학적 지식의 융합 등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식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영혼을 지닌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와 적절성을 가질지는 오로지 영성 있는 목회자들의 성도들과 함께 하는 사역에 달려 있다. 교회의 수적 성장을 추구할 때가 아니다. 성도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영적 만족을 주는 교회가 살아남는다. 영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교회들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목회자는 교회가 다가올 세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또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유례없는 많은 도전을 교회에 가져올 것은 분명하지만, 목회자가 이런 도전이 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성령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세대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주시리라 믿는다. 복음으로 잘 준비된 새로운 세대를 잘 길러낼 수 있도록 창의적인 교회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육신화 된 사역을 통해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오는 도전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