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우리 한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한 마디로 감동이었다. 더구나 한인 교계가 단합되었던 것이 감동을 이루어 낸 한 축이었다. 짧은 기간에 보여주었던 단합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만방에 알려 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지난 42년간 한인타운과 연관된 생활을 해 왔다. 법적으로는 미국 시민권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 해왔고 투표에도 참여를 잘 해온 편이다. 그런데 투표 행렬이 그렇게 긴 것은 처음 보았다. 더구나 한인들이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몰려온 투표는 지난 40여 년간 보기가 힘들었던 모습이다. 지난 6월 19일에 있었던 한인타운 분할을 반대하기 위한 주민 투표 현장의 모습이다.
유권자 등록을 하고 났더니 우편으로 투표용지가 배달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우편 투표를 미리 했다. 그러나 그날 투표 현장에서 도울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 오후 일정을 비워 두고 투표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 투표 현장으로 나갔다. 그날 내가 맡은 방송 시간이 있어 그 시간 내내 계속 투표를 독려하고 호소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다행이었다고 생각 한다. 공적인 방송이지만 그 시간에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하면서 차편이 필요한 분 들은 내 차로 모시기로 약속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날 따라 날씨가 무더웠는데도 벌써 투표 현장에는 지팡이를 든 노인들 30여 명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3시간 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자원 봉사자들도 뙤약볕 아래서 몰려 오는 차량들을 정리하고 노인들을 부축하느라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물을 나누어 드리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의자를 구해 와서 노인들을 앉혀 드리고 투표장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게 안내해 드리는 것은 우리 같은 도우미들의 몫인 것 같았다. 수많은 차량들이 몰려오는데 교회 대형 버스도 눈에 띄고 밴도 여러 차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어떤 부동산 회사는 온 직원들이 업무를 전폐하고 회사 차량과 개인 차량으로 섬겨 주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계속 된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직장에 휴가를 낸 사람도 있고 가정 주부들도 있다고 들었다. 불평을 늘어 놓는 자원 봉사자들은 없었다. 돈을 받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순수한 마음이다. 우리 이민 선배들이 땀 흘리면서 일구어 놓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우리 손으로 지켜 나가고 우리 신앙 생활의 요람 같이 생각해왔고 선교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우리 타운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는가 하는 일념 때문이리라.
어느 투표에서 98.5%의 성공을 얻을 수 있나? 그런데 이번에 우리 한인들은 해냈다. 거의 2만 명의 한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단합했기 때문이다. 투표에 동참 했던 사람들도 놀랐고 자원봉사자들도 놀랐다고 한다. 투표를 주관한 시 공무원들도 놀랐다고 한다. 한인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있던 정치가들도 그 모습을 보며 좀 놀랐으면 좋겠다. 정치 헌금이 필요할 때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다가오면서도 뒤에서는 딴전을 피우는 그들도 이번에 한인들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고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번에 한인 커뮤니티가 하나로 연합 된 것은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연세가 드신 어른들과 젊은 세대가 하나가 되었고 사업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하나가 되고 교계가 하나가 되었다. 너나 할 것 없는 단합의 모습이다.
한인 교계가 이 일에 동참한 것은 늦은 감이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목사들이 모여 이 일을 위해 급하게 범교계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도회로 모이면서 교계에 이 사실을 간곡히 부탁하고 호소한 것이 5월 24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 많은 교회들이 강단을 통해 시간 시간 마다 호소했다. 교회 버스를 제공하고 밴을 내준 교회도 여러 곳 있었다. 지금까지 보기 힘든 모습이다. 외면했던 교회는 없었던 것 같았다. 교파도 초월했다.
그날 도우미로 섬기면서 길게 서 있는 행렬 가운데 교인들을 많이 만났다. 어떤 사람은 5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백인 남편과 함께 60마일을 달려 왔다고 한다. 내가 아는 어떤 권사님은 한국에서 여행중에 있었는데 강단에서 목회자가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 바쁜 일정 가운데서 3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 투표를 했다고 한다. 얼마나 귀한 모습인가?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손을 잡아 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일은 나 같은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밤 10시까지 같이 있었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던 것은 역사의 현장에 나 같은 사람도 동참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일로 모든 것을 해냈다는 자부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수많은 일들이 우리 커뮤니티 앞에 산적될 것이다. 그때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단합이 필요할 것이다. 특별히 교계가 앞장 서야 할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힘의 원리는 모을수록 커진다는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