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 내가 만난 하나님'(4)
7년째 전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으로 지목된 북한에서 지하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 그가 만난 예수를 부인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예수를 전하기 위해 북한에서 10곳이 넘는 감옥을 전전하면서도 믿음을 지켜낸 탈북인 박한나 목사(김익두 목사 손자며느리)의 간증을 소개한다.
어느 날은 긴 다리를 지나가는데 차들이 다 서 있었습니다. 차들이 왜 섰냐고 물으니까, 목단강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죄인을 잡는다고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분증 검사가 제일 무서우니 저는 기도했습니다. 바로 앞차가 조사받고 지나갔습니다. 우리 차가 검열관들 앞에 서야 하는 그 순간, 차가 움직였습니다. 눈을 딱 감고 있었는데, 우리 차 앞까지 검열하고 우리 차부터는 검열을 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고 막아주셨습니다.
한 번은 탈북자 30여 명이 성경공부를 하는데, 공안에서 잡으러 왔습니다. 아파트에 있으면 어떻게 알고 와서, 복도에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면 라디에이터에 밧줄을 매고 3층에서 밧줄을 타고 창문으로 한 사람씩 내려갔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면 못하겠죠. 그때는 살아야겠다,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다가 거기서 또 자리를 옮기고, 옮기고 했습니다.
제가 한 번 붙잡히게 되었고, 그때는 4개 감옥만 돌았습니다. 다시 중국에 들어갔다가 또 붙잡혀서 도문변방대로 가게 됐을 때는 주일날이 가까워 오는데, 예배를 드릴 수 없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일날이 가까워오는데 예배를 드릴 데가 없습니다. 혼자서라도 예배 드릴 때가 행복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혼자서 담요를 쓰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는데, 아침에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주일날 아침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내는데, 군인들이 복도에 서더니 조선말을 쓰는 자매가 나와서 이름 부르는 사람들은 다 나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내 이름을 안 부르고 문을 채웠습니다.
원래 주일은 북송을 안 합니다. 이상하다 했는데, 가만히 보니 저쪽에 자매 3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몰래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주님! 예배 드리라고 이 시간을 허락하셨군요!' 했습니다. 감시하니까 제대로 예배할 수 없고, 시편 23편을 전한 후 '어디 가서 죽는다 해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자. 천국 가자'고 서로 약속했습니다. 그다음 날 북송되는데, 다른 데 갔었던 사람들도 같이 갔습니다. 어제 어디 갔냐고 물으니까 "다른 방에다 다 몇 명씩 넣었다"고 했습니다. 예배 드릴 수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북송되어 보위부에 가면 여자들은, 세상에 인권유린도 그런 인권유린이 없어요. 여자는 따로, 남자는 따로 4~5명씩 작은 방에 가둬 넣고 단발머리 군인 처녀들이 와서 검사하는데 옷을 홀딱 벗기고, 머리, 입 벌리고, 귓구멍도 보고, 겨드랑이, 발바닥 다 보는 거예요. 돈을 붙였나 검사하고 마지막에 긴 의자가 있는데, 한 사람씩 눕히고 여자들이 고무장갑 끼고 다 자궁 속에 손으로 헤집어 봅니다. 돈을 감췄나 해서. 들어갈 때부터 계속 기도했는데 나와보니까 우리 조만 그것을 안 하고 다른 조는 다 뺏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구나 했습니다.
그때 나는 이틀 동안 조사받고 끝났습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다른 사람을 예심 하던 보위부 요원이 절 나오라고 하더니 "니가 중국에서 뭐했냐"고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다. 돈벌이한 것밖에 없다." "니 젊은 사람에게 뭘 전해주었나, 예수인지 뭔지 니가 봤나." 3일간 고문을 받으면서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견뎌내리라, 정신을 잃고 혹시 주님을 부인할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습니다.
계속 악을 쓰는데 도저히 견딜 힘이 없고, 지쳐서 끌려나가서 기도했죠. 주님 내가 힘이 없는데 나를 도와달라고, 내가 정신을 잃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게 해달라고 이런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가 고난 주간 즈음이었는데 생각이 또 납니다. 그때야 내가 진짜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말 필름처럼 주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고 십자가 달려 죽으시기까지 다 지나가면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난 그것만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당한 고통은 주님이 당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생각하고 봤습니다.
내가 그 필름이 끝나는 순간, 보위부 요원이 내 무릎을 땅 차서 그때 정신을 차렸습니다. 니가 나가서 며칠 단련을 좀 받더니 정신이 돌았다고, 그렇게 때려도 아픈 것도 모르고 계속 앞에 벽만 보는 것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내 방에 끌어다가 처넣고, 제가 잠깐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우렁차고 쩌렁쩌렁 울리더니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오늘 물 위를 걸었느니라.' 이런 음성이 들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내가 고문당하는 것도 주님 다 보고 계셨구나. 나는 주님 손에 꼭 붙잡힌 몸이구나' 했습니다. 몇 십 명 같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 보는 거예요. 저는 앞에 벽이 막 진동하는 걸 눈으로 봤는데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그 어떤 위험에 처해도 피할 길을 주고 위로를 주고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홉 번째 감옥에 갇혔을 때는 영양실조가 심해 귀도 먹고 눈도 멀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고 설 수도 없었습니다. 감옥에 차가 없으니까 감방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제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질질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두 발짝까지는 내 발로 갈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양쪽 엉덩이 아래서부터 유리관에 물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허리가 탁 꺾어져 내 몸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이런 증상이었습니다. 나는 물도 삼킬 수 없고 너무 아팠습니다. 내가 물도 침도 삼킬 수 없다고 간수가 이야기하자 의사가 펠라그라(니코틴산 결핍증후군, 옥수수 주식 지방에 유행)라고 영양실조로 온 것이라고 했답니다. 의사가 이제 살아도 어려우니 한쪽 구석에 가만히 놔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감방에 있는 사람들이 제 손바닥에 글로 썼습니다. 의사도 나를 못 살린다고 했다고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주님 오늘 밤에라도 살아있을 때 오시라고 만날 기도를 속으로 부르짖었는데, 의사가 3일도 못산다고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내가 남편이 못다한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권리 없습니다. 나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꼭 주님 일 하겠습니다'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또 엘리야에게 나타났던 기적을 나에게도 달라고, 저 간수들을 까마귀로 써달라고 이런 기도를 속으로 하고 있었는데 한 이틀 지나니까 나는 담배 한 대도 간수들한테 사준 것도 없는데 나한테 정말 잘하는 거예요. 날 정말 불쌍하게 생각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면회 온 음식을 갈라서 나를 주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작은 신음도 다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죽지 않겠구나, 주님께서 도와주시는데 내가 죽지 않겠구나' 이런 신심이 생겼습니다. 그 밥을 갖다 주는 순간에 나는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목구멍이 아프지만 꾹 참고 억지로 삼켰습니다.
감옥에서 제가 3년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 죽게 되어서 감옥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꽃제비들 수용소에 가서 꽃제비들하고 같이 살았는데, 움직이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발목에 힘이 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벌벌 기어서 벽 쪽으로 가서 벽을 붙들고 서서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며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그 찬송을 부르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이 고난을 주님의 힘으로 능력으로 이기고 나가면 주님께서 나에게 예비하신 큰 축복을 꼭 주시리라,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 고난을 이기고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걸을 수 있게 됐을 때 간수들에게 연락이 갔어요. 내가 조금씩 걸을 수 있다고, 간수들이 또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3년형을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죽어도 감옥에서 죽어야 한다고요.
감옥 앞에 나를 갖다가 문건도 인계하고, 철문 앞에서 철대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철대문 위에 "도주하지 말라. 도주는 자멸의 길이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가 오늘 이 문턱을 살아서 넘어가지만, 3년 후에도 다시 살아서 넘어올 수 있겠습니까' 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주님께선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고 음성을 주시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돕겠다고, 나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정말 내가 꼭 살 것이다 생각하고 담대하게 그 문턱을 넘어서 들어가니까 다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방에 이쪽에서도 저쪽 구석에도 죽은 사람 있고 내내 그랬습니다. 감방에서도 많이 죽었습니다.
'주님, 내가 하나님 말씀을 모르는 이 사람들 속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해줄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내가 무엇을 해야됩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나누고 희생하라' 딱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희생은 하지만 나눌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면회 올 사람도 없고 뭘 나누라고 하실까, 나한테 나눌 것이 있으니까 나누라고 하셨겠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일회용 종이컵만한 옥수수 덩어리를 주는데 새카맣게 썩었습니다. 그걸 보고 나한테 나눌 것이 그것이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3년 동안 매일 세끼 요만한 종이컵 밥 덩어리, 반찬도 하나도 없고 그것을 매일 3분의 1 정도 먹고 나누고, 많이 먹으면 절반 정도 먹고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 조그만 밥 덩이가 놓이면 그 순간에 1, 2초 동안 반짝 오늘은 더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기쁨이 잠깐 보입니다.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에 나눌 것을 주시고 그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30배, 60배, 100배 기쁨이 차고 감사가 찼습니다. 그 기쁨과 감사가 내 마음에 빈자리를 채우므로 3년간 배고픔을 느끼지 않고 감옥을 나왔습니다.
비 오고 눈보라가 치면 대문 지키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소나기 오는 날도 가릴 데 없고 비를 맞으며 서서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랬어요. '주님, 날아가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깃들 곳도 있고 개들도 비 오면 비를 맞고 있지 않은데 나만 혼자 벌판에서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냐'고, '나는 춥고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주님이 '그럴 때는 찬송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감옥인데 찬송하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는데, 비가 치고 눈보라 치는 소리에는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소리 내서 찬송할 수 있고, 찬송가 456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도 불렀습니다. 밤 10시까지 근무를 서는데, 그때는 큰 마당 가운데 가서 율동도 했습니다. 영하 30도 넘는 곳, 옷도 제대로 못 입었는데도 춥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복음성가를 부를 때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져서 매도 맞고 벌을 서고, 그런 과정이 많았습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에, 나와 함께하시고 항상 위로하셨습니다.
어느 날은 전도하라고 해서 이 감옥에서 어떻게 전도하냐고 했습니다. 전도를 안 하자 불을 안은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서 막 땅에 뒹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순종하겠다고 했을 때 해지가 되었습니다. 누구한테 전도해야 할지 모를 때, 보다 보면 주님께서 저 사람한테 가서 전도하라고 사람을 딱 찍어주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죠. 사도행전 16장 31절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 얻으리라'는 그 말씀을 전도했을 때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영접했습니다. 그다음 성도가 생겼을 때, '주님 성도만 주고 예배 드릴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나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예배 드리는데, 함께 예배 드릴 곳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저 변소가 있지 않으냐' 하는 거예요. 요새 화장실이 아니라, 옛날 시골 화장실인데 물이 차고 비 오는 곳이에요.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그 더러운 데서 해도 되냐고, 그런데 내가 생각하니까 그 감옥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변소예요. 악취가 나니까 누구도 거기 신경 안 씁니다. 그래서 거기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 나갈 때는 서로 마주 지나가면서 눈을 보지도 않고, 조용히 '할렐루야' 하면 밑으로 손잡으며 '아멘' 하고, 그 모습도 들키면 죽어야 됩니다. 그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낼 수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3년형을 다 마치고, 그 많은 시체더미가 나가는 곳에서 주님께서 저를 살리셨습니다. 언제는 강을 건너는데 홍해 바다의 기적을 달라고 기도하고, 고센 땅으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한 열흘쯤 됐을 때 그 집의 딸부터 전도하라고 하셔서 그 딸이 예수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 딸이 혼자 알 수가 없어 공산당인 아버지한테 전도했는데, 아버지가 제게 "아주머니가 중국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면서 "하나님을 봤소. 하나님이라는 게 있는 거요?"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소리 해서 우리 가족 다 몰살당하는 꼴 보겠느냐고" 했습니다. 제가 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시내에 갔다 오더니 아버지에게 "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정말 메추리알 만한 것이 밑에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내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 이런 일 있다. 꼭 하나님이 고쳐주신다.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한집안 식구도 한꺼번에 전도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씩 차츰차츰 전도하고 누가 지하 성도인지 생각도 못 합니다. 두 주일 조금 더 지났는데 그 딸이 밤에 자다 나를 깨우면서 만져보라고 없다고, 잘못 만졌지 반대쪽이 아니냐고 했는데 양쪽 다 보라고 흔적도 없는 거예요. 주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완전하게. 그것이 증거가 돼서 농촌에 친척 집을 돌아다니면서 누구네 집 딸 유방암, 이거 보라고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다 고쳐주셨지. 아버지는 몰랐지" 이 자매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나 보면 그렇게 미안해하고, 좋은 것은 먹을 것이라도 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3분 거리의 가까운 산에서 새벽마다 예배 드리고, 성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산속에서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하나씩 흩어지는데, 거기 앞에 있는 할머니가 그 집에 온 손님 누구냐고, 왜 새벽마다 산으로 가냐고 조심하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께 기도했더니 염소 한 마리를 이 집에 예비해주셔서, 염소를 끌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새벽예배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10월 11일, 새벽에 예배를 끝마치고 일어서서 보니 큰 무지개가 색깔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흰 무지개가, 할머니도 모른다고 하고 저게 무슨 뜻일까 했습니다. 내가 홍해 바다 기적을 달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 주신다는 약속이고 하나님 능력이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차츰차츰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으로 그 사선을 넘고, 브로커와 만나 60~70리 길을 걸어 네 번째 만에 브로커와 연결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아들을 찾아주시고 아들이 돈을 보내줬을 때 제가 그 돈을 날 도와준 군인한테 주려고 안 쓰고 남겨뒀습니다. 마지막에 군인한테 도움을 받을 때, 북한 돈으로 바꿔가지고 밤에 손에다 돈을 쥐여주면서 이것이 이 땅에서, 피 같은 돈을 누가 줄 수 있겠느냐고, 내가 예수 믿는데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서 이 돈을 주셨고, 내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너한테 주는 것이니 꼭 이것으로 조금씩 사 먹고 예수님한테 기도하고 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데, 건널 수 없는 깊은 바다 같은 곳에서 홍해 바다의 기적을 저에게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중국 땅까지 오게 됐고, 하나님 은혜로 대한민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정말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함으로 찬양하고, 예수님 한 분만으로 항상 감사함으로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북한땅에도 자유의 날이, 신앙의 자유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