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와 신앙적 이념을 같이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괴로움 때문에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사도라 하지만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지도자들은 그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택한 12제자를 의미합니다. 또한 12라는 숫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속하지 못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사도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비판한 자들은 힘을 합하여 그를 괴롭혔습니다. 어떤 자들은 그를 협잡꾼이라고도 했고, 심지어는 그가 전하는 복음은 사기요, 위증이라고 까지 몰아 붙였습니다. 이러한 냉혹한 비판과 배신과 오해 속에서 그는 참으로 인간으로써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맛보았습니다. 이러한 가슴 아픈 심정을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말하면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마라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진심어린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를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이 되어서 욕을 하거나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때에는 내 자신의 진실과는 상관이 없이 내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 자신의 공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떠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고백은 과장된 고백이거나 자신의 진실성을 가장한 고백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가 그의 실체를 증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증명하는 흔적이었습니다. 그가 주를 위하여 받은 상처와 시련입니다.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종인 우리에게도 복음을 위한 희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짊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을 각오를 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 그의 종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지배가 아니라 봉사의 모습인 것입니다. 섬김의 정신으로 가득 찬 예수는 참 인간의 모습을 자신의 삶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어떤 제도나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에서 보여준 봉사와 섬김의 정신에 있는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지배가 아닌 봉사의 모습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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