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과 펜스 룰: 펜스 룰을 둘러싼 작은 논란
두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언론에겐 하나의 축제나 다름 없었다.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질 때마다, 언론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취재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온갖 어두운 비밀들이 파헤쳐지고, 온라인 기사 조회수는 급증했다.
최근 미투 운동에 관한 대중의 관심도는 1차적인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새로운 폭로 건이 발생해도 잠시 주목을 받을 뿐이다. 인터넷 포털 1면에 관련 기사가 등록되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쉴새 없이 거듭되는 폭로에 대중의 피로감이 점차 쌓여가는 듯하다.
결국 미투 운동을 '미투 극장'으로 만든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미음에서 지울 수 없다. 주변인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하고 예방할 수 있는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채 그 힘을 잃어가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의 한 반작용 혹은 연쇄작용으로 펜스 룰(Pence Rule)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펜스 룰이 권력형 성폭력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편 중 하나라고 옹호하는 이들과,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 혹은 성폭력일 뿐이라며 비난하는 이들 간에 작은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펜스 룰은 현 미국의 유력 정치인으로 현재 부통령을 역임하고 있는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평생 지켜 온 철칙이다. 2002년 당시 미 연방 하원의원이던 펜스는 <더 힐>(The Hill)지와 인터뷰에서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여성과 일대일로 식사를 하거나, 아내가 동반하지 않는 술자리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을 가정생활의 한 철칙으로 지키고 있다"고 진술했다.
펜스의 이런 생활 원칙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 정치인으로서의 신념 혹은 계산이 함께 결부되어 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펜스는 1959년생으로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Edward Pence)는 한국전쟁에 전투병으로 참전해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은 전쟁영웅이다.
미국에 이민해 정착한 아일랜드계 가문 가운데 다수가 그러하듯, 펜스 가문도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고수했다. 펜스 역시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인디애나 주 소재 사립대인 하노버 대학교(Hanover College) 학생일 당시 그는 개신교회 출석을 시작했고, 그 후 자신을 개신교인으로 소개해 왔다.
▲예배에 참석해 기도중인 펜스 부통령. |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몇몇 독특한 정치적 행동원칙(예를 들어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절대 채택하지 않는 것)을 고수한 바 있는 그는, 미국 내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모범적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정치적으로 여러 흠결이 있어 심각한 수준의 비판에 직면한 경험이 많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보수 기독교의 가치를 지키는 생활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는 전 세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높은 평판을 확보하고 있다.
그가 이성(異性)을 대하는 개인적인 방침이 '펜스 룰'이라는 말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데는,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그의 모범적 가정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펜스 룰은, 사실 펜스 부통령에 의해 일반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 이전에도 다수의 기독교인이 알고 있었으며 실천하고 있던 원칙이었다.
◈원죄와 펜스 룰: 빌리 그래함 룰과 기독교적 인간 이해
혼전 성관계, 불륜이나 성범죄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이성과의 접촉을 제한하는 기독교계 지도자들의 노력은, 원래 펜스 룰이라는 말로 알려지기 전에 '빌리 그래함 룰(Billy Graham Rule)'로 명명돼 있었다. 최근 소천한 빌리 그래함 목사는 1948년 캘리포니아 모데스토에서 개최된 한 부흥집회 설교 중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사역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타지를 방문하는 동안, 간음의 죄악에 빠져든 복음전도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사역자들은 굳게 약속합니다. 우리는 간음의 유혹과 타협하는 모양새나 간음과 관련된 의혹을 받을만한 어떠한 상황도 회피할 것입니다.
저는 아내 외의 여성과 단독으로 여행하거나, 만나거나, 식사를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수여한 명령, 즉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딤후 1:22)'는 명령이 곧 우리 복음전도자들에게도 수여된 명령임을 확신합니다."
▲청년기 복음사역자 시절의 빌리 그래함 목사(가운데). |
이 모데스토 선언(Modesto Manifesto)은 이후 '빌리 그래함 룰'이라는 말로 기독교인들 가운데 알려졌고, 다수의 기독교 사역자들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회 지도층 사이에서도 이성을 대하는 원칙으로 채택돼 왔다. 펜스 부통령 역시 신앙의 양심과 정치 경력을 지키기 위해 이 빌리 그래함 룰을 고수해 왔다.
일견하기에 이 원칙에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어 보인다. 교회 지도자 및 사회 각계 지도층이 바른 행실을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이 원칙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빌리 그래함 혹은 펜스 룰을 비판하는 이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 원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로 펜스 룰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펜스 룰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적 유대관계 형성 기회가 강제적으로 박탈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펜스 룰은 결국 미투 운동에 대한 온전한 대답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사회활동 영역을 축소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 및 성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펜스 룰 비판자들의 주장이다.
▲미투 운동이 정점에 근접하면서, 직장에서 여성들을 대하는 남성들의 '펜스 룰'에 대한 찬반 논쟁이 점화됐다. |
펜스 룰을 둘러싼 논란의 이면을 살펴보면, 보수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는 인간 이해와 진보적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삼는 인간 이해의 가치 충돌이 발견된다.
우선 펜스 룰 옹호 측의 사상적 기반인 기독교의 인간 이해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죄악의 측면을 우선적으로 문제시한다. 주후 4-5세기경 중세 기독교 신학의 거두 어거스틴은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을 뒷받침하는 신학적 인간학을 정립했고, 이 사상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칼빈의 예정론으로 발전되었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죄 이전 인간의 최초 상태는 진정한 자유의지를 가진 상태였다. 아담과 여자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posse peccare, posse non peccare)였다.
그러나 죄를 범한 이후, 아담과 여자,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현생 인류는 죄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들의 의지는 항상 죄를 지으려는 방향으로 정향돼 있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non peccare)에 처해 있다. 훗날 루터는 이처럼 죄를 지으려는 방향으로만 작동할 수밖에 없는 의지를 노예의지(servo arbitrio)로 명명했다.
18세기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영미권 기독교계에 커다란 부흥의 열기를 불어넣은 후, 사람의 의지에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믿음은 일정 부분 철회된 것이 사실이다. 19세기 미국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 부흥주의(revivalism) 전통을 함께 이어받은 오늘날 후기근본주의 개신교(post-fundamentalist Protestantism), 즉 복음주의 개신교 지도자들 상당수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의 의지와 악의 의지가 혼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빌리 그래함은 이 복음주의 운동의 대표주자였던 인물이다. 당연히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한 확신보다는 복음을 듣고 믿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우선시했다. 그럼에도 그는 죄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전적 타락을 수긍하지 않는다 해서 죄의 파괴력까지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불과 한 달 전 소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후기근본주의 개신교 부흥운동 지도자로서 인간에게 선의지와 죄성이 혼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복음전도와 회개가 선의지에 따라 살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다. |
그는 거듭난 신앙인이라도 복음과 멀어진 생활에 젖어들고 신앙의 양심을 저버린다면 언제든 영혼을 파괴할 만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 거듭남의 정체가 칼빈이 주장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든, 웨슬리가 주장한 '기독교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든, 아니면 19세기 웨슬리주의 부흥주의자들이 주장한 '제2의 축복(the second blessing)'이든 간에, 강렬한 성화의 체험이 있는 자라 하더라도 죄악을 지을 수 있는 여지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경계심.
빌리 그래함을 비롯한 다수의 복음주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이 경계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 룰은 바로 이런 기독교적 인간이해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진보와 펜스 룰: 성차별과 사회주의적 인간 이해
반면 펜스 룰 반대 측의 사상적 기반인 진보적 사회주의 이념은 그 주된 기원을 19세기 사상가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통상 마르크스라 하면 가장 먼저 공산주의 경제학자 및 정치학자라는 타이틀을 떠올리는데, 사실 마르크스는 학계에서 경제학자 및 정치학자라는 명성에 못지 않게 철학적 존재론 및 인간학을 수행한 사상가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마르크스의 존재론 및 인간학은 청년 헤겔파(der Junghegelianer)라고도 불리던 헤겔 좌파(der Linkshegelianer)의 주동인물이자 자유주의 기독교 신학자였던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의 가르침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헤겔은 세계의 역사가 신적 단계의 정신인 절대정신(der absoluter Geist)에 의해 견인된다고 보았고, 이러한 견인에 끌려가는 인류의 정신이 이 세계에서 가장 고결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류의 정신의 운동 덕에 세계가 변증법적 긴장 가운데 진보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1831년 헤겔이 사망한 후 이 절대정신의 정체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 때문에 헤겔 우파와 헤겔 좌파 간에 격렬한 논쟁이 발발했다. 헤겔 우파는 이 절대정신을 기독교에서 가르쳐 온 초월적 절대자의 뜻과 의지로 해석함으로써 기독교적 유신론을 옹호하려 하였다.
반면 헤겔 좌파는 절대정신이 인류가 물질세계와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인간의 자기의식을 신격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유물론과 무신론을 지지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바로 이런 유물론과 무신론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고 있다.
▲바우어(왼쪽)와 마르크스. 헤겔의 존재론을 좌파적 입장에서 재해석한 인물들이다. 오늘날 사회주의 이념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
마르크스는 초월적 존재인 신과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오직 물질만이 존재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정신의 힘에 의해 견인되는 역사적 진보를 믿었다. 다시 말해, 그는 칸트나 헤겔 등 계몽주의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한 인류의 진보 및 선의 실현을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부여된 염세적 혁명가의 이미지는 그가 인류 역사의 악으로 지목한 자본주의에 대한 과격한 비판 때문에 덧입혀진 것에 불과하다. 실상 마르크스의 인간 이해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적 인간 이해보다 낙관적이다. 다만 낙관적 미래를 여는 방편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과 폭력혁명을 앞세운다는 점이 그의 인간에 대한 신뢰를 퇴색시킬 뿐이다.
진보적 사회주의 이념이 고수해 온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는 20세기 실존철학의 영향 및 전세계적 공산주의 경제체제 붕괴로 인해 상당부분 철회된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적 인간 이해가 인간의 선의지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은 것처럼, 사회주의 이념 역시 인간의 본성 깊이 도사리고 있는 악의 파괴력을 보다 확고하게 인정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진보적 사회주의 이념의 기본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한 사회의 발전과 도덕의 실천. 비록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 여러 문제와 갈등이 발생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정신은 단계적 진화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룩하는 데 이른다는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펜스 룰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 대한 심각한 인권 탄압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편이 맞을까? 단지 기독교인으로서만 아니라 당장 미투 운동이 한창인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로서, 개인적으로는 펜스 룰을 옹호하는 것이 실존적 현실에 적합한 인간 이해에 기반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지난 칼럼에 적시했듯, 미투 운동은 그리 숭고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지 않다. 대중은 피해자들의 인권 보장, 피해 구제, 2차 피해 방지 등 공의를 실현하는 후속조치들을 촉구하기보다,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바쁘다. 일부 피해자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석연치 않은 정황을 갖고 이익을 취하기 위해 무고한 음해를 펼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자들도 존재한다.
이처럼 정의의 구현보다 죄악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보다 신속하게 달려가는 양상을 보이는 미투 운동의 진행 과정을 보고 있자면, 펜스 룰을 옹호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영화 <연애의 목적> 주인공인 유림(박해일 분)에게 펜스 룰이 적용됐다면? 아마 영화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불륜도, 권력형 성폭행도 사전 차단되었을 테니까. |
펜스 룰 때문에 유발되는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 제한의 문제는, 사실 펜스 룰 자체의 문제이기 이전에 개인적이고 업무 외적인 감정적 유대관계를 공적 관계보다 우선시하는 후진적 기업문화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이 문제는 단지 펜스 룰 하나만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개혁 노력을 통해 대응해 나가야 할 문제다.
영화 <연애의 목적>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거의 한 순간도 빠짐없이 펜스 룰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결혼 약속을 맺고 있는 남성 교사가 숱한 시간을 자발적으로 여성 교육실습생과 함께 보낸다.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술자리 역시 빠지지 않는다. 남성 편에서 조금만 삿된 생각을 갖는 즉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이 영화에 펜스 룰을 적용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영화의 주된 줄거리가 되는 권력형 성폭력 및 불륜이 성사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제법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잃었겠지만, 현실에서는 차라리 그런 불의로운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불의로부터 유발되는 흥미라면, 아무래도 영화가 현실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이, 현실이 영화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박욱주 박사.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