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확산되어 가는 미투 운동 때문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과거 좋아했던 연기파 배우들도 갑자기 사과하고 취소하고 사라지고 있고, 모 대학 연극영화과 남자 교수 전원이 성추행을 했다는 보도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판도라 상자가 열리듯 번져가는 미투 운동을 문재인 대통령도 적극 지지한다고 나서고 있는 입장에 가속이 붙어 더욱 용기를 내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기의 위치 때문에 가진 권력을 남의 것을 착취하는 데 악용하는 것은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말무덤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북 예천군에는 말무덤이란 게 있답니다. 달리는 말(馬)이 아닌 입으로 말하는 말(言)의 무덤으로 언총(言塚)입니다. 말무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에 여러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살았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을 어른들이 이 말싸움의 원인과 처방을 찾아 고민하던 중, 사발 하나씩 가져와 싸움의 발단이 된 말썽 많은 말을 뱉어 사발에 담아 파묻고 소위 말의 장례식을 치렀는데 그때부터 마을의 싸움이 사라지고 평온해져 이웃 간에 정이 두터워졌다고 합니다.
꼭 필요한 말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입을 열지 모릅니다. “내가 참다가 당신 생각해서 할 말은 해야겠다 싶습니다.” “당신 애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으로 시작되는 영양가 없는 말들과 우리의 이웃을 함부로 비난한 말들이 오늘의 갈등과 소원함의 원인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1:19)고 하지 않습니까? 한다고 하는 말에 실수가 많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의 위험성을 이렇게 경고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 심지어 “말(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이 우리의 입에도 재갈을 물리라고 말합니다(약3:3). 마치 말(言) 장례를 치르라는 말과 흡사합니다.
성도들은 말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위해 주는듯 말은 하지만, 남의 염장을 지르는 어리석은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을 전하는 지혜보다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지혜입니다. 한번 뱉은 말은 형체가 없다고 그냥 허공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애리게 남을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 가정과 교회에도 말무덤이 필요한 곳은 없을까요? 감사의 기도가 있어야 할 가정의 식탁에서, 찬송 소리만 있어도 부족한 교회 가는 차 안에서, 격려와 사랑만 있어야 할 카톡방에서, 무덤에 묻어야 할 말들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묻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