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용사로 나타납니다. “용사이신 하나님”(God the Warrior)은 이집트와 싸우셨으며, 가나안의 여리고성과 아이성 주민들과 싸우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 거주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존재와 싸우시고 사탄의 견고한 진을 파괴한다는 것은 고난 중에 있는 신자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용사이신 하나님과는 너무 다른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the crucified God)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신 전능의 하나님은 가장 약한 모습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사람을 위하여 고통당하시며, 인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시는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성경은 어린양의 실패와 죽음과 비참함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양의 승리를 소개합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악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악함으로 싸우지 아니하시고 죽임 당하시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희생양” 혹은 “속죄양”(scapegoat)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을 위하여 돌아가시는 사랑과 희생과 섬김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원수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계시하시면서, 하나님의 약함으로 인간의 완악함과 완력을 폭로시킨 예수님은 정의와 사랑의 표상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계시록 19장에 나타난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매우 다릅니다.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19:16)이며,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Faithful and True)이며 “하나님의 말씀”(계19:11, 13)입니다. 재림 주는 만국을 치며, 철장으로 나라들을 다스리시고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백마를 탄 그리스도는 짐승과 표적을 행하는 거짓선지자,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를 파멸시킵니다. 그리고 그는 지도자 노릇을 한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유황불 못”(계19:20)에 던져버립니다.
하나님 혹은 예수님이 용사가 되셔서 직접 참여하시는 전쟁을 우리는 “거룩한 전쟁”(holy war)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에 나타나시는 종말의 전쟁에서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싸우는 모습은 혹 우리 성도나 교회에 대하여 거룩한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청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종종 역사 속에서 이러한 관점은 이교도에 대한 심판의 역할을 감당하는 군인인 성도, 즉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는 “십자군”이라는 열망에 불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교회 자신을 정의의 군대로, 상대방을 박멸하여야 하는 악의 세력으로 몰아갔습니다. 결국 교회나 혹은 일단의 종교 세력이 말할 수 없는 파괴와 살육의 주체가 되곤 하였습니다. 역사의 종말에 나타나실 심판주의 역할을 역사 속의 교회가 시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변함없는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