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때 제 가슴 속에 늘 맴돌았던 단어는 Integrity(신실함. 정직. 청렴. 진실함)라는 단어였습니다. 특히 다윗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이 말이 나왔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지 늘 묵상하게 만들었습니다. 50대를 살고 있는 저에게 파고드는 단어가 있습니다. 너그러움(generosity)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성품에 관해 이야기하시면서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 것도 바라지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6:35-36) 그리고 예수님이 들려 주신 이야기들 가운데 탕자의 비유가 있는데, 여기에는 아버지의 성품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큰 아들이든 작은 아들이든 아버지는 자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슬퍼합니다. 자식의 잘못을 용서할 뿐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줍니다. 우리가 늙어간다면 그 모습이 이런 모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북전쟁으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마음이 아프고 고생했습니다. 희생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게티스버그 전쟁을 계기로 북군에게 승리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남군은 자꾸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링컨은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미드 장군에게 명령서 하나를 전달합니다. '이 명령서는 기록으로 남길 자료는 아닙니다. 장군이 성공한다면 이 명령서를 공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실패했을 때는 링컨의 명령에 따라서 된 일이라고 공개하십시오. 성공을 한다면 그 공적은 장군의 것이며 실패를 한다면 그 책임은 나의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은 미드 장군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잘 되면 상대방 때문이고,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대통령의 자세. 참 멋지지 않습니까?
자꾸 반복해서 죄를 짓고,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을 보면서 모세는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슬픕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듦으로써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출32:31-32. 새번역) 만약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벌하셔서 죽게 하신다면, 나도 이 백성들과 함께 죽겠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까지 모세는 사랑했던 것이지요.
헨리 나우웬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언젠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한테 인사하러 갔다가 거룩한 비움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죽어가는 친구 앞에서 과거를 캐묻거나 미래에 관해 장밋빛 꿈을 펼쳐보인다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우린 그저 함께 있었을 따름입니다. 아무런 두려움도, 죄책감이나 수치심도,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처럼 마음을 비우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탕자의 귀향, p.245)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불안, 강박, 두려움,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신 성품을 생각하면 우리는 날마다 감사하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