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은 죽음 너머에 삶이 있다는 절대적 확신이다. 너나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아픈 마음에 소망은 위로를 준다. 소망은 참아내고, 설득하며, 승리한다."
21일 천국으로 '이사'한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설교로 유명했지만, 많은 저서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국내 번역된 그의 가장 최근 도서는 <내 소망은 구원입니다(아드폰테스, 원제 The Reason for My Hope: Salvation)>이다.
"구조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 첫 설교 '구원에는 목적이 있다'에서 빌리 그래함(그레이엄)은 비행기 사고를 당한 자신의 경험을 시작으로 여러 사건사고와 거기서 살아남은 또는 살아남지 못한 사례를 한동안 언급한 뒤 구원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가 좀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로부터' 구조될 때는 또한 '무엇인가를 위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다. ... 아무리 이타적이고 용감한 사람도 우리를 확실한 죽음에서 구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구조될 희망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단지 누가 실제로 우리를 구원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그게 바로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설교하는 빌리 그래함. ⓒC채널 제공 |
빌리 그래함은 "구원받을 것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거의 백년을 살면서 배운 것을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러면서 속량과 죄, 천국과 지옥, 십자가와 부활, 예수 그리스도와 재림, 신자의 삶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빌리 그래함은 책 곳곳에서 강한 확신을 기초로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잇따라 던진다. 독자들이 가진 선입견과 의구심을 흔들어,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마치 그가 평생 해 왔던 집회를 재현하듯 '영접기도'로 독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따라 읽은 기도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려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 이것이 누구든지 생명을 얻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자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고는 고령의 나이에도, 자신의 주소까지 적어놓으며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돕겠다고 했다.
빌리 그래함의 책은 이 외에도 <마지막 경고(베드로서원)>, <새로운 도전(두란노)>, <인생(청림출판)>, <천사 하나님의 비밀특사(생명의말씀사)>, <빌리 그레이엄의 소망(홍성사)> 등이 있다.
◈복음주의 관련 서적에서 보는 빌리 그래함
직접 저술한 도서들 외에도, '복음주의'와 관련된 책에서는 대부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최근 나온 로저 올슨(Roger E. Olson)의 <복음주의 신학사 개관>이 대표적이다.
당시 주류였던 전투적이고 분리주의적인 근본주의를 밀어낸 '신(新)복음주의', 즉 1942년 전국복음주의협회(NAE) 창설로 태동한 후기근본주의 신복음주의 연합은 다양성과 느슨한 연대 때문에 당초 성공이 힘들어 보였으나, 빌리 그래함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구심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빌리 그래함과 그의 사역이 없었더라면 복음주의와 복음주의 신학 어느 편도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래함의 양대 주제는 개인적 회심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께로의 회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계시하신 말씀인 성경이다. 그래함은 성경 전체가 영감으로 쓰여졌고, 믿음과 실천에 관련된 모든 사안에 있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밝혔다."
빌리그래함전도협회(BGEA)와 1947년 오켄가가 설립한 '초교파 복음주의' 풀러신학교(Fuller),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알릴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이후 복음주의의 구심점이 됐다.
복음주의에 대한 우려 섞인 전망 역시 빌리 그래함으로부터 나온다. "복음주의 내부의 다양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빌리 그래함 목사가 생존하여 복음주의 연합을 견고하게 지지할 수 있는 동안 두 그룹(칼빈주의-아르미니우스주의) 간 긴장은 그저 수면 아래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래함 목사의 은퇴나 사망으로 '그래함 목사라는 접착제(Graham glue)'가 녹아버리면, 교리적으로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복음주의자들과 웨슬리주의를 포함하는 방어적 아르미니우스주의 복음주의자들은 서로 결별하게 되고, 이로써 복음주의 연맹은 해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세계기독교학을 연구하는 영국 에든버러대 브라이언 스탠리(Brian Stanley) 교수가 쓴 <복음주의 세계확산>은 아예 부제가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의 시대'이다. 영국 IVP의 '복음주의 역사 시리즈' 일환인 이 책은 20세기 후반, 이전과 달리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진 우리 시대의 복음주의 형성과 전개를 다루고 있다.
스탠리는 "빌리 그래함이 1949년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그리스도께로' 집회를 열면서 성급하고 젊은 남침례교 전도자로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처음으로 장식하기 전까지는 그를 근본주의 전통에 속한 수많은 다른 부흥사들과 구별할 만한 요소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 소식이 주요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방송인이자 경주마 소유자 스튜어트 햄블렌, 전직 올림픽 선수 루이스 잠페리니,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 짐 바우스 같은 지역 유명인사들이 회심하면서 그래함은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십대선교회(YFC) 소속이던 그래함은 1948년 9월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BGEA)'를 설립했고, 1957년 풀러신학교 이사로 임명됐다. 스탠리는 "빌리 그래함은 세계적 명사라 불릴 만한 지위를 얻은 20세기 후반의 유일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었다"며 "역사상 다른 그 어떤 복음주의자도 그래함만큼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적 명성을 누리지 못했다. 그가 얻은 국제적 공인의 지위는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시각 매체에 힘입은 바 컸다"고 소개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오른쪽)와 그의 설교를 통역하는 김장환 목사. ⓒC채널 제공 |
또 "그래함의 국제 사역이 어떤 분명한 문화적 재앙 없이 이토록 광범위한 지리적 확장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은, 그의 전도대회가 모든 상황과 배경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놀랍다"며 "그래함은 1960-1980년대 내내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도하는 강행군을 이어갔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해외 사역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함은 이미 1952년 전쟁중인 한국을 방문해 미군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래함의 국제 사역이 복음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단지 지리적 확산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BEGA는 마치 WCC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공식 대표로서 전 세계 통합 네트워크를 가진 것처럼, 복음주의 진영에서 그때까지 유사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공개적으로 그래함 전도단과 자신들을 연관지은 다양한 국적의 기독교인은 특정한 가족 연대와 소속감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을 세계 기독교 지도의 특정 지역에 위치시킨 것이었다."
스탠리는 1973년 하루에 112만명, 대회 기간 312만명이 참석한 서울 대회를 언급하면서 "전 세계적 종교 현상으로서의 그래함 대회들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였지, 이 대회 때문에 교회가 성장한 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아니었다"며 "물론 빌리 그래함이 어느 누구보다도 전 세계에 복음주의 기독교의 공공 인식과 대중성을 고양시킨 인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