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은 불안합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지 못한 데서 오는 신분의 불안이 있습니다. 영어의 미숙함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 손해배상을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유혹에 빠지거나 탈선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가깝던 친구가 심장마비로, 교통사고로,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다음에 내 차례가 아닐까 불안합니다. 작은 식당을 연 어느 집사님은 전에는 몰랐는데 유사한 직종의 식당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이니까요.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데, 우리에게는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삶은 왜 이리 불안한 것일까요?
동생 라헬은 언니 레아보다 훨씬 예뻤습니다. 그런데 언니 레아는 아들을 네 명이나 낳았고 자신은 아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남편 야곱의 관심이 언니에게로 쏠리게 될까봐 그녀는 불안했습니다. 불안이 극심해지자 그녀는 남편에게 짜증과 신경질을 부렸고, 언니를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은 자기와 야곱 사이에 아이가 없으므로,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도 아이 좀 낳게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창30:1) 그러나 야곱은 그녀의 불안을 다독여 주지 못했습니다. 야곱도 짜증과 화가 났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이오?" 그녀를 안정시키고 위로하기에는 야곱이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럴 때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면 좋을까요? 라헬은 할머니였던 사라가 사용했던 방식을 제안합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불안해서 결국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몸은 점점 늙어가고 마음은 불안해지는데,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하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야곱 또한 불안한 상황을 신앙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해서 자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경쟁적인 관계에 처할 때 우리도 이러한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 곁을 떠나거나 자녀를 멀리 떠나 보내야 할 때도 불안합니다. 한국 사람은 결혼식 때 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와 불안한 애착 관계나 과도한 애착을 유지해 온 부모는 더욱 심란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부모는 자녀가 어릴수록 의존 욕구를 채워주고, 자녀가 성장해 갈수록 독립 욕구를 격려해줍니다. '헬리콥터 부모'는 아이에게 언제나 잔소리를 하고, 학교와 교사에게 간섭을 하는 부모를 말합니다. 자녀를 마마보이로 키우는 것이지요. 이런 심리에도 불안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간섭과 개입이 자녀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불안이 심한 부모는 자녀를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 만들기>라는 책을 쓴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이런 가정에서는 '불량품의 인간이 제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나 비판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도 불안합니다. 고통과 죽음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불안 요인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수없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한복음14:27).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불안할수록 주님의 손을 꼭 잡고 행복하게 동행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