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신년새해를 맞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장과 일터와 자녀 위에 주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개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하나는 시간의 양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이고, 또 하나는 시간의 질을 의미하는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 즉 그분과 내 인생에 의미 있는 그 카이로스의 시간에 더 많은 관심을 둡니다. "때가 차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시간, 그래서 내게 은혜를 주시거나, 의미 있는 사건을 일으키시는 시간이 우리가 좋아하는 카이로스입니다.
그런데 더치 쉬츠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포착하라."는 책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하나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카이로스의 시간을 중시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크로노스의 시간, 즉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을 경시하는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개의 개념은 완전히 분리 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이는 같은 시간의 다른 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카이로스의 사건은 그냥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는 긴 크로노스의 시간 중에서,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크로노스의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오늘도 예배하고, 다음 주도, 주간에도 새벽에도 예배합니다. 성경공부도 있고, 기도회도 있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일들이 크로노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지겹게 느끼기도 하고, 지나가 버린 시간, 별 가치가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 카이로스의 시간만이 진정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서 우리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가치 없는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후사가 있을 것이라는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이 언제 성취되느냐? 자그마치 24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아들을 얻는 그 성취된 "카이로스의 시간"을 주목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크로노스가 없었더라면, 약속의 땅을 얻는 시간의 카이로스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40년이 저들을 다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긴밀히 엮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 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멍하니 서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분 앞에 의미 없는 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