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정치

우베 시몬-네도 | 조미화 역 | CLC | 328쪽 | 15,000원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 한국교회에서는 개인 성경공부와 소그룹 성경공부 유행이 일어났었다. 수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한국교회는 막 일어나기 시작한 지적 호기심에 맞춘 다양한 경건서적들도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매진했다(한국보수 개신교회의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차후에 평가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또한 창조과학과 같은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들과 변증 이론들이 서점과 강단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보수개신교회의 우월성을 한껏 자랑하듯 회자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개신교회가 이론적으로도 체계가 있고, 지적인 합리성이 있는 종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불교와 유교의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에 반해 당시 기독교는 젊은이들에게 개방적이고 새로운 지식과 사상의 통로이기도 하였기에, 지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모여들었다(어떤 면에서는 당시 남학생과 여학생이 공식적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이 교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고정관념

본서는 루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개선하기 위한 변증서이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나치에 굴복하고 투항했던 과거 독일교회의 책임이 루터의 두 왕국 이론에 근거한다는 그동안의 다수 학자들의 주장들에 대해 저자는 루터를 변증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둘째, 루터의 두 왕국 이론에는 잘못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사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변증하고자 한다. 셋째, 실제 2차대전 직전과 과정 중 괴르델러를 비롯한 루터주의자들이 히틀러에 저항했다는 역사적 증거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루터의 두 왕국 이론에 대한 고정관념을 변증해 가고 있다.

변증의 한계

나도 과거에는 변증의 방식을 즐겨 했고, 또한 그것이 옳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변증을 듣고 있거나, 변증서를 읽고 있을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편파적인 관점에서 시작하여 편파적인 자료들만을 제시하면서 변증적 논리들을 맞추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변증서들을 많이 읽지는 않았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경험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아직도 중립적인 변증서를 읽은 적이 없다. 어쩌면 '변증(辨證)'이라는 것 자체가 중립적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본서도 루터의 비폭력적 저항을 변증하기 위해 많은 이론들과 이야기들과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출발 자체부터 중립적이지 않았고, 결국 루터주의자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문제들은 모두 피해가고 옹호적인 내용들만 나열하고 있다.

먼저, 루터 자신의 삶과 사건들을 다루지 않고 있다. 둘째, 나치주의에 합류한 루터교회의 이야기들을 다루지 않고 있다. 셋째, '선제공격에 대한 대응적 반응, 비폭력'은 루터의 삶과 태도에 일치되기 힘들다. 넷째,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은 심각한 이분법적 신학사상과 사고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적용해야 할 이론이다.

함께 봐야 할 부분

그러나 변증서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을 부분적으로는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서도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괴르델러의 나치에 대한 저항과 동독 교회의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독일의 통일을 가져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루터주의자들의 저항정신 때문임이 분명하다.

사실 한국 개신교회의 다수가 장로교에 속하기에, 여전히 칼뱅에 비해 루터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조직신학 중심의 한국 개신교회 신학의 발전은 종교개혁을 논하면서도 여전히 교리 중심적이었는데, 그로 인해 사실 그 교리나 사상의 형성이 역사적 배경과 상황에 의한 산물이라는 사실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본서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과 지명들과 관계된 이야기들이 매우 생소하기도 했는데, 이것 또한 필자 자신이 루터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균형 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는 대목이기도 했다. 필자는 본서의 논리에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나, 본서의 내용에는 감사를 표한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