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다고 느끼거나 영적인 시험에 들면 우리는 더욱 이기적인 사람이 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살고 싶은 유혹이지요. 힘든 나를 위로하고, 더 이상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그러나 우리는 힘들면 힘들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아무리 힘든 문제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이해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언제나 내 편인 것이죠. 어느 목회자는 암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 제 아픔이 너무 커서 그 아픔이 가족들의 아픔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아픔이 너무 길어서 그 아픔이 교회의 어두운 그늘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아픔이 유별나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고난을 얼마나 심하게 겪었는지 살 소망마저 끊어졌었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그가 반복적으로 되뇌 인 말은 "감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려는 결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 또 앞으로도 건져 주시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께 두었습니다."(고후1:9-10)
그는 전에도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여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아 기절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에도 깊은 밤 중에 깨어나자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아름다운 노래로 부른 것이지요. 그 노랫소리를 옆 방에 있던 죄수들이 모두 들었습니다(행16:25). 내 몸에 생긴 상처를 바라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분명 예수님 몸에 난 상처 자국을 연상했을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이 받은 채찍질과 속살이 뜯겨져 나가는 고통, 그리고 대 못이 발목과 손목에 박힐 때 생긴 그 상처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처는, 주님이 나 때문에 받으신 그 십자가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주시는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 있어도 감사했습니다. 내 인생 길을 인도해주시는 주님이 곂에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그는 행복했습니다. 상처보다 더 큰 사랑, 삶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주님의 은혜.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믿었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수 많은 시련과 고통들도 우리가 믿음으로 수용하면 유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365일 내내 찬양하는 일은 중단하면 안 됩니다. 찬양은 내가 누구인가를 일깨워주고, 내가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우리의 감성을 깨워줄 것입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찬송가 303장) 찬양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지 말고, 찬양할 이유를 찾는다면 우리는 감사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기범 칼럼]어찌 찬양 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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