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청년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공관복음서에 나온다. 그만큼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란 존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으로부터 좋은 조언을 듣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는 율법을 실천하면서 많은 좋은 일을 행하였을 것이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예수님께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십계명 중 여섯째 계명을 거론하시면서 이를 지킬 것을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시는데, 그는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이 부자도 율법적으로는 모범적인 사람이었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재물에 대한 탐욕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에게 갖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는 재물이 많아 예수님의 말씀에 슬퍼하며 떠나버린다. 소유물이 그를 사로잡고 있어, 그는 그 재물을 예수님과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재물을 얻었으나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보다 비극은 없다. 현세에서 잠시 편한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부자 청년의 예를 들어 제자들에게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고 말씀하신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부자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로 여겼던 제자들은 이런 말씀에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때에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달려 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가진 재물이 많았기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재물에 매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을 거부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재물뿐 아니라 자신의 학위, 명예, 건강, 쾌락 등에 매여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등한시하기 쉽다.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보다 썩어 없어질 것들을 우선 두고 있지는 않는가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을 내 인생 최고의 가치로 두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 안에도 이런 기본적인 신앙을 시시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자꾸 넓은 길로만 가려는 이들이 많다.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을 부르며 눈물로 헌신을 다짐하던 순수한 신앙이 어설프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고 만 것 같다.
다가오는 겨울만큼이나 황량한 신앙의 한파가 한국교회에 엄습하고 있다.
채천석 크리스찬북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