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기독교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깊은, 근본적인 변화. 여러분이 냉담하고 무감해졌다고 하도, 다시 부드러운 마음이 될 수 있다. 쓰라림과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여러분의 배경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가장한다. 성경은 "모든 악들을벌리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라" 이는 가정문이 아닌 명령문이다.
이는 매우 자유로운 해방이다. 말씀은 우리에게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끔찍한 숙명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하나님의 명령은 항상 자유와 삶을 변화시키는 믿을만한 진리와 함께 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셨다. 우리는 새로운 아버지와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의 '원 가정'이 가진 숙명론적인 힘을 깨뜨린다. (마23:9)
또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서 사랑하신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들이다(엡 5:1). 하나님의 사랑을 닮으라는 명령은 공허한 외침이 아니다. 이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용서하신 것처럼 마음을 온유한 마음을 갖고 용서하라(엡 4:3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매우 능력이 있다. 이는 변화를 가능케 한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해 자신을 주셨다. 그리스도가 당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 안에서 동행하라(엡 5:2). 이같은 명령은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와 더불어 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셨다. 여러분에게 사랑할 기회가 생긴 그 순간, 누군가 '당신은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때, 사랑하라는 그분의 명령은 분명히 가능한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내게 참된 진리인 것처럼 말이다.
운명주의자가 되지 말라. 기독교인이 되라. 변화는 가능하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리스도는 살아나셨다. 약속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