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부산대 캠퍼스를 누비던 활발한 여대생이었고,
30대에는 서울의 모 대학 앞에서 분식집을 운영했다.
40대에는 최고령 사법고시 합격자 타이틀의 변호사로,
50대인 지금, 가장 많은 주민이 사는 자치구 수장이다.
서울 송파구청 박춘희 구청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가운데 힘겨운 걸음을 내디딜 때도,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에도, 오직 중심 되신 그리스도의 이끄심에 온전한 집중과 순종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왔다.
1990년대 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38세 나이로 사법시험에 도전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단단해진 그의 걸음을 통해,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들여다 봤다.
-신앙 1세대이다. 하나님을 만난 것은 언제인가.
"경남 산청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시골에서 살림집이 딸린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던 어머니는 유독 교회 다니는 사람을 싫어하셨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 눈을 피해 친구들을 따라 갔던 것이 첫 걸음이었다. 어릴 때는 무엇이든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교회에 가는 게 참 즐거웠다.
고3 때는 고등부 부회장을 했던 나는 대학 진학 후 마치 현존하는 종교를 모두 경험해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천주교, 불교 할 것 없이 탐방에 나서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신앙의 방황은 짧지 않았다. 대학가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던 시기 삶에 찾아온 깊은 절망 가운데 섰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두 무릎을 꿇었다. 그때 하나님은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를 만나주셨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던 인생의 어둠 가운데, 우연히 참석하게 된 부흥집회에 전일 참석하게 됐다. 마지막 날 삶의 주인 되신 주를 따르는 헌신을 결단했고,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시작됐다.
수많은 새벽을 깨우며 어느 날은 무릎을 꿇고 지나온 과거들을 낱낱이 고하며 회개기도를 드렸고, 어느 날은 온전히 내 마음 상태를 전하기도 하고, 찬송가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낮아졌을 때 가장 높여주신 주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사법시험 도전이 인생의 첫 전환점을 만들어준 것 같다. 늦은 나이 '무(모)한 도전'에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38세 때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무모할 수 있었을까 싶다. 더구나 그 기간이 10년이나 지속되다니. 하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워진 내 삶에서 못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과감히 분식집을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사법시험 도전 계획을 알렸다. 변호사 오빠부터 가족들 모두 나를 적극 응원해 줬다. 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보니 덜컥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당시 출석하던 도봉순복음교회 함동근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목사님을 통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을 받고,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말씀을 붙들고 시작한 것이니 하나님이 금방 합격시켜주실 것 같았다.
한 해 한 해가 더해질수록, 시련과 좌절 앞에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부에 집중한다며 조금씩 나태했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계속 공부를 하라고 했지, 올해 합격 시켜주신다고 응답한 적은 없으셨다.
그제서야 불안도 회의도 아닌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100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공부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1차 시험만 세 번 합격했다. 2차 시험은 6번만에 통과했다. 인내의 시간 속에, 나를 만나주시고 내 삶을 만져주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다. 낮아짐과 순종의 시간 뒤에, 하나님은 비로소 '2002년 44회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자'로 나를 세상에 드러내 주셨다. 내 평생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못한 일이다. 기적의 드라마를 써주신 하나님은 내가 감히 잊지 못할 방법으로, 잊지 못할 때에 당신의 임재를 보여주신 것이다."
▲석촌호수 '스위스 스완' 앞에서 주민들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
- '최고령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사법시험에 도전해 10년만에 합격한 '9전 10기 변호사'다. 분식집 아줌마에서 변호사가 된 10년간의 사법시험 도전 가운데 끊임없이 묻고 또 물은 나의 길에서, 결코 불안에 떨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불안과 초조를 압도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뿐이다.
힘들 때마다 이 길을 시작하게 하신 말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다. 세상 속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 있었던 나를 든든히 붙들어 줬고, 그 어느 때보다 빛나게 했다."
-구청장으로써 또 한 번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는데.
"변호사 박춘희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며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가 하면, 국선변호도 많이 했다. 하나님이 주신 길 위에 선 나는 자연스레 주의 향기가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평범한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내게, 하나님은 또 한번 인생의 전환기를 선물로 주셨다. 우연히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지방선거 클린공천감시단' 위원에 위촉됐다. 당시 위원 대부분이 변호사들이었고, 송파구는 여성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돼 여성 후보를 찾는데 거듭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당에서는 송파구에 거주하고 있던 나에게 수차례 송파구청장으로 입후보 할 것을 제안했다. 고사에 고사를 거듭하다 결국 송파구청장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행정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송파구청장에 취임했다.
비록 행정 경험은 없었지만, 그 어떤 노하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이라는 스승이 있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간음한 여인을 비롯한 낮고 천한 이들을 사랑으로 섬기시지 않았나. 세상과 소통하며 사랑을 나눠주는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있었기에, 이미 가야할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재선에도 성공했다.
"구청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직원들과의 소통에 나선 일이다. 송파구 직원 1,400여명을 대상으로 '밥상머리 소통'에 나선 것이다. 직원들과의 소통 시간은 생각지도 못했던 세세한 것들까지 얻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다. 늘 나와 함께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먼저 하나님을 만난 선배로, 세상에 빚진 마음으로 더 열심을 내어 직원과의 소통, 주민과의 소통에 나섰다.
구정을 이끈 8할은 '소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송파구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재선 도전 당시, 송파를 한 번 더 섬기게 된다면 구청 신우회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를 다잡기 위한 약속이었고, 또 혹시나 구청장이 나가면 한명이라도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구청장으로 다시 한번 송파를 섬기게 된 이후, 수요예배 시간을 1순위로 체크해 두고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기대도 조금씩 응답되는 듯 하다. 구청 신우회도 조금씩 성도가 늘고 있다고 하니 참 기쁘다.
매일 아침 구청 직원과 송파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말씀을 붙들고 송파구를 사랑하며 섬기는 데서부터 '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송파' 만들기가 시작됐고, 완성되고 있다."
▲청소년들 앞에서 인사하는 박춘희 구청장. |
-청소년, 여성, 복지 사업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송파구청장으로 지난 7년간 펼친 구정의 중심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송파에 사는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행복 송파' 구현을 위해, 청소년과 청년, 여성과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특화된 구정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또 '미래 송파'를 만들어 갈 우리만의 문화를 만드는 일도 열심을 내 추진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꿈을 꾸고 건강한 지역 구성원으로 자라는 송파가 되도록 또래울, 유레카, 청소년 참여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취약계층을 위해 안전마을을 만들고, 혹한기·혹서기 대책을 마련해 든든한 안전망을 만드는데 힘썼다.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송파실벗뜨락'을 통해 일자리 창출, 새로운 노년문화 개척, 사회공헌 활동 등에 앞장서고 있다.
아울러 저출산 문제 해결의 좋은 예로, 전국 최초로 문을 연 '구립 산후조리원'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송파만의 품격을 만들어 줄 '책 읽는 송파'도 성과라면 성과다."
-앞으로의 계획은.
"변화된 삶의 시작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었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인생스토리 또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세상 속에서 성공을 약속한 적이 없으시다. 인생 선배로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다.
다행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꿈만 갖게 하셨다. 단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라고 조건을 거신 것이다.
송파구는 지난 7년간 송파만의 특성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주력해 왔다. 급격한 도시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 계층 간 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행복한 송파를 만드는 일, 그 일에 항상 앞장서 왔고 앞으로도 부지런히 뛸 것이다. 오늘도 나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간구한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회를 위해 쓰임받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다면 그곳에서 주의 향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