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부르시면서 세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큰 민족을 이루는 것 둘째는 이름이 창대케 되는 것 셋째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두 가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받을 복의 약속이라면, 마지막은 그 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곧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자신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 나누어줄 복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을 대접하게하기 위하여 먼저 큰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어 훈련시키시는 과정 속에서도 남을 대접하는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양육 방식은 랍비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랍비의 명성을 듣고 스스로 찾아와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셔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 자세는 부활하시고 마지막 승천하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실망하여 옛 직업으로 되돌아간 제자들을 직접 찾아오셔서 마지막 당부를 전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먼저 찾아 오셔서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남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남을 대접하는 자세의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도 남을 대접하려는 목적을 지향해야 합니다.
기도의 최종적 목적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거룩한 목적이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고프고 목이 마를 때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와 목적과 사명과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을 회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준과 기호에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것을 말합니다. 성령은 그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구할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남을 대접하기 위한 목적 위에 세워야 합니다. 기도의 내용에는 구할 것도 있지만, 찾아서 회복시킬 것도 있고, 막힌 것을 열어 소통시킬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좋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