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 사랑에 관한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사진 속 얼굴들만큼이나 아련한 기억들이지만, 뒤돌아보면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들고, 때론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첫 사랑이라 말하긴 좀 뭣하지만, 제게도 그런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신학기를 막 시작한 봄이었던가... 제가 '생활' 완장을 차고 학교 중앙 입구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키 큰 언니(?)들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제게 뭔가를 건네주고 사라졌습니다. 포장을 벗겨보니 작은 앨범이었고, 그 속에는 지난 가을에 따서 말렸음 직한 예쁜 단풍잎들이 깨알같은 사연들과 함께 담겨져 있었습니다. "쿵쿵쿵..." 사연을 읽는 제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키가 제일 크고 예쁜 선희가 제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ㅎㅎ 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키가 170이 훌쩍 넘어 각종 운동부의 표적이 되던 여자 아이가 140도 채 안되는 작은 남자 아이를 자전거를 타고 졸졸 따라다니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하지만 나름 두근두근, 애들 말로 심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두근거림은 사실 첫 사랑에만 국한된 마음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처음엔 늘 두근거림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고 싶습니다. 아니, 기회가 없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기회를 만들어 자꾸 보고싶습니다. 그것이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처음 사랑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그 두근거림을 잊어버리게 되면 헤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두근거림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장에 보면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을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들은 주를 위해 이런 저런 수고를 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어려움 가운데 인내했던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죄악들과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실, 그렇게 칭찬받을 일을 많이 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계 2:4) 무엇입니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런 저런 일들을 아무리 많이 해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은 어떤 일이 아니라, 처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첫 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고, 단기 선교도 가는데 하나님을 향한 두근거림을 상실한 채 어떤 종교적 의무감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처음 사랑할 때처럼,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을 찾던 마음을 잃어버리고, 기회가 날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러 나가는 마음은 아닐까요? "사랑은 무슨 사랑, 그냥 정으로 사는 거지"라고 말하는 이 시대 슬픈 남편과 아내의 자화상이 오늘 하나님과 나의 모습은 아닌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련한 기억 속의 첫 사랑이 아닌, 처음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그 때처럼 사랑하실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