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약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약이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커피를 마셔 보았지만 커피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어나 걸으며 기지개를 펴고 몸을 풀어 보았으나 그 후에도 변화가 없었다. 머리가 무거운 가운데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평소 가까이 지내는 친구 목사의 전화를 받고 모처럼 점심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두통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도중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이다. 나은 줄도 모르고 점심 후 후식을 먹으며 더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목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보통은 만나서 하고 있는 사역의 이야기와 서로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들을 나눌 때가 많았는데 그날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 어느 때에 계획을 세워 유렵 종교 개혁지를 돌아보자는 이야기였다. 쉽게 결정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벌써 다녀온 것과 같이 배낭여행 이야기를 열심히 주고받았다. 비용은 가장 저렴하게 계획하고, 영국에서부터 체코까지 500년 전에 개혁이 일어난 장소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500년 전에 주신 감동을 우리도 새롭게 느껴보자는 거룩한(?) 욕심이었다. 목사들이기에 그 어떤 여행보다도 가장 의미 있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만한 여행이 될 것을 기대하며 평생 큰 도움이 될 만한 여행을 위해서 열심히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떠드는 동안 떠나지 않은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행을 하며 세상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것이고 계획대로 여행을 가든 혹은 가지 못하든 믿음의 친구가 있음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날 밤 지난 며칠 동안 겪은 두통의 원인 제공은 ‘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과 인생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있지 않은 내가 바로 그 두통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외부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을 어렵게 할 수 있었지만, 믿음의 친구와 함께 앞날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두통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만큼 나 스스로의 생각에 얽매여 자유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두통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하나님은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장 3-4절) 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나를 부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행복함이고 자유함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나 자신을 세상에 묶고 또한 자신의 과거 그리고 상황에 묶어 둘 때가 많다. 결국에는 두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두통에서 말끔히 나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신다. 자기 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묶여 있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묶고 인생의 모든 결정을 거기에서 하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이 아닌가?
그러면 부르심이 무엇인가? 내 안에 사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기에 내가 주인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에 주인이시고 나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부르심이다. 이것을 마음 속 깊이 깨닫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세상에서의 두통이 모두 사라질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