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때문에 사랑과 불구함에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 사랑은 똑 같지 않습니다. 때문에 사랑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불구함에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살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작 나를 대적하는 자는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나를 고발하는 자도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 사랑보다 인간의 사랑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실망과 의심이 내 마음을 누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삶 속에, 사역 속에, 우리 교회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하신 증거는 무엇인가? 와, 바울은 주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을 섬기며 항상 그런 죽음의 위기를 당하는 자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백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을 주님 앞에서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마디로 나는 자격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 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바울처럼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은 이렇습니다.
또한 이런 나의 모습을 항상 괴로워하는 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제 정신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늘 주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에게서 떠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입니다. 잘못된 것은 항상 회개하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언제든지 나를 받으실 준비를 하고 계신 분이심을 압니다. 심지어는 내가 죄인이었을 때에, 내가 경건치 않을 때에,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아낌없이 내게 주신 그 분께서 나를 사랑치 못할 그 어떤 상황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나를 사랑하시며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낙망 가운데 있다거나, 의심 가운데 있다면 내게 주어진 선택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싸워 이길 길을 생각하고 결단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늘 놀라운 사랑을 받는 자로서 엄살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처럼 낙망이나 좌절에 빠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내 모습을 보기보다는 그런 내 모습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나의 연약함에도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