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썼던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고린도에서 거의 1년반 동안 머물면서 바울이 성도들과 나누었을 사랑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바울이 직접 개척했던 교회라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 소위 ‘사랑장’이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3장 같은 내용은 더욱 가슴 절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메타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간 닭살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2004년도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이 김정은 앞에서 자기 가슴을 톡톡 치며 “이 안에 너 있다” 고백한 것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기회 있을 때마다 써먹습니다. 이서진이 ‘다모’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한 것부터 최근 화제를 모았던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가 송혜교에서 첫 키스를 한 후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까지 우리는 사랑의 고백들 앞에서 울고 감동하고 그리고 꿈을 꿉니다. 그런 사랑이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삶에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사랑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과 에너지를 얻는 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어렸을 때 산타클로스를 믿었다가, 머리가 큰 후는 믿지 않다가, 성숙한 후에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산타클로스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드라마 속의 사랑을 믿었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지 않다가, 어느 날 훅하고 찾아온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전혀 상관없던 유치한 유행가 가사들이 전부 다 자기 얘기를 노래하는 것 같으면 사랑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당신 없는 세상은 온통 당신뿐이고, 당신만 내 옆에 있으면 온 세상은 사라집니다”같은 시에도 눈물이 글썽거린다면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이광수의 장편 소설 ‘무정’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 추운 밤, 시베리아 벌판에서 공허하게 떠 있는 반달을 바라보며 “찢어진 반달아~” 외치며 울었던 주인공과 함께 찡하는 동감을 주체할 수 없어 이 표현을 따로 적어 놓습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이 잔을 들고 “당신의 눈동자를 위하여” 건배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외칠 날도 있지 않을까 대사를 되뇌어 왔는데, 사랑이 찾아오면 우리는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바로 캐스팅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이 오면 세상이 변합니다. 늘 출근하는 길에 피어있는 들꽃도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까지도 이전에 보던 것이 아닙니다. 몽땅 다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됩니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고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변한 것입니다. 내 눈에 사랑이라고 부르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본 것입니다. “이 안에 너 있다” 하며 나에게 찾아오실 예수님, 그 예수님의 렌즈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