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상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되고,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똑같은 사건 앞에서 서로 다른 관점이 서로 다른 고백을 가져 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도 우리의 고백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고백은 바로 우리의 관점에서부터 시작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 앞에서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우리의 고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점이 바뀌면 우리의 고백이 바뀝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백이 바뀌면 우리의 인생도 바뀝니다. 그런데 민수기에 보면 약속의 땅을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탐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각 지파에서 뽑힌 12사람이 40일 동인 탐지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 합니다. 그런데 이 12명의 보고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즉 그들은 각기 다른 보고, 각기 다른 관점, 그리고 각기 다른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목회 중에서도 이런 성도들을 쉽게 보게 됩니다. 똑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똑 같은 것을 보고도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긍정적인 보고, 할 수 있다는 보고를 하는 사람을 봅니다. 왜? 이렇게 서로 다른 보고를 하게 되는가? 그들의 보고를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안 된다는 이들의 관점은 그 백성의 땅과 그 백성의 사람들에 관한 보고였습니다. 어디에도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사실에만 (fact) 근거한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이들의 보고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즉 그들의 보고는 신앙에 (faith) 근거한 보고였습니다.
결국 안 된다는 이들은 그들의 관점대로, 그들의 보고대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된다는 이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의 보고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오늘 우리의 관점도 사실에만 근거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근거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주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가 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의 입술에서 이런 신앙과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나의 입술에서 어떤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슨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까?
[김병규 칼럼]좋게 보게 되면, 고백하는 것도 좋아집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