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가이자 방송인인 저스틴 브라이어리(Justin Brierley)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팟캐스트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을 통해 '내가 무신론자가 아닌 3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그는 앞서 유명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 데런 브라운 등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무신론자들과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인물이다.
브라이어리는 "내가 만난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자연주의'(naturalism)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는 초자연적인 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실제로 이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물체로 본다. 결과적으로 삶에는 옳고 그름의 경계가 없으며, 사물에는 어떤 대단히 중요한 목적이나 궁극적인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이곳에 우연히 존재하게 됐고, 우주 안에서 우리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없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러한 삶의 관점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의 현실과 현실을 체험하는 방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갖고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난 인생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있어서 이 관점이 무신론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저스틴 브라이어리가 언급한 '무신론자가 아닌 3가지 이유'다.
1. 과학은 하나님을 향해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미신적인 필요를 과학이 대체하고 있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존재 방식에 대한 자연적인 설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초자연적 수호신을 부를 필요가 없다.
지난 60년 동안, 과학은 우주가 140억년 전부터 시작됐음을 확인했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 문제들, 심지어 시간 자체가 항상 존재해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를 존재하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과학은 또 이 우주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대단히 세밀하게 조정된 물리적인 힘과 숫자들의 속성 때문이다. 이는 우주를 만들었고, 생명을 발전시킨다.
우주와 생명은 그 안에 과학을 넘어서는 설명을 전달하고 있다.
과학은 스스로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주의 물리학은 우아한 수학 방정식으로 배치될 수 없다. BBC 브로드캐스터이자 무신론 과학자인 짐 알 칼릴리는 '이는 굉장히 거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왜 자연이 수학적인 언어로 말을 하는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유진 위그너는 이를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한 선물'이라고 했다.
2. 인간의 가치는 허상이 아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비준했다. 이는 인권에 관한 기념비적인 문서로 여겨진다. 이 선언은 '모든 인류의 존엄과 평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전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한다'는 문단으로 시작한다.
이같은 우주적 인권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문명화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높은 도덕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신앙의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선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존엄성을 가진다는 신념은 오직 하나님이 존재하실 때만 타당하다.
무신론 관점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지구상 다른 생명체보다 특별할 만한 이유가 없다. 만약 우리가 진화의 과정에 따른 결과물이라면, 우리는 단순히 운이 좋아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를 차지할 만큼 뇌가 발달한, 우연히 발생한 생물체에 불과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어떠한 도덕성도 동일하게 우연의 결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에게 부여하는 본질적인 인권과 가치관은 단지 진화의 역사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가?
3. 하나님께서 지으신 공간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수학자이면서 철학가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공간이 있다. 이는 다른 어떤 창조물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만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가끔 '하나님이 지으신 구멍'이라는 말로도 쓰이는 이 공간은 인류 역사에서 계속 반복돼 왔다. 사랑, 목적, 그리고 삶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우주적 갈망은 모든 문화권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또 클래식 협주곡부터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에 스며져 있다. 또한 모든 예술, 영화, 문학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더욱 지식이 많아지고, 편해지고, 기술과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미를 찾고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갈망한다. 모든 자기계발서, 심리학 책, 상담 칼럼은 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 우리의 공통된 노력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무신론도 답을 갖고 있다. 마술사 데런 브라운은 "진화론은 삶의 위대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속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새로 태어난 첫째 아들에게 느끼는 사랑의 충만함은 자식을 돌보고 보호하려는 본성에 따른 생물학적 힘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사랑은 화학적인 반응 이상의 것으로, 우리는 사랑을 매우 깊이 안다.
음악은 음악만이 가진 방식으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의 고막에 닿고, 뇌에 세로토닌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전파 등을 만들어내는 공기의 흐름 등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직 물리적인 과정만 설명할 수 있다. 바하, 모짜르트 또는 지미 헨드리스 등이 우리를 다른 공간으로 이끄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러한 초월의 순간들은 물리적으로 설명되는 물질 세계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C. S. 루이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기는 배고픔을 느낀다. 자, 음식이 있다. 집오리가 수영을 하고 싶어한다. 자, 물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성적 욕구가 있다. 성(sex)이 존재한다. 내게 만일 이 세상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난 다른 세계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에 대한 가장 최고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