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건망증이 심해지고 치매에 걸리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죽는 날까지 우리에게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할 의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언제나 내 가슴에 간직해야 할 개념. 첫째,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 개념입니다. 자아 의식입니다. 우리는 간혹 이름, 학벌, 직업이나 직위, 직함을 자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정말 중요한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며, 그 십자가에 달렸어야 할 죄인이 바로 나임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이런 개념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내가 큰 죄인임을 자각하고 나면, 울면서 회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눅18:13).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는 자신에 대한 무지와 교만, 그리고 욕심에서 비롯되는데, 내가 누구인가를 깊이 고민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두번째, 은혜 개념입니다. 감사 의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사랑, 건강, 용서, 자유, 천국, 자연의 혜택, 미래에 대한 소망까지 모두를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았습니다. 죄를 지어 비참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경건하게 살아서도 아니고, 예쁘기 때문도 아닙니다. 종교생활을 열심히 해서도 아니고, 귀여운 행동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 첫번째 개념, 내가 죄인이라는 개념만 갖고 산다면 우리는 모두 우울증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겠지만, 이 은혜 개념 때문에 우리는 살 맛이 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죽을 만큼 사랑하신 그 분이 지금도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에게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무엇을 주장하거나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은혜 의식이 희박해지면,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하게 됩니다. 봉사하면서도 짜증을 냅니다. 내가 없으면 이 교회가 안 될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요. 은혜의식이 충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향기를 냅니다. 공동체를 살리고 사랑이 샘솟게 만듭니다.
세번째, 사명 개념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을 자각하고, 내가 지금도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왜 나를 구원하신 걸까요? 본래 창조 의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각 자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여 사명감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이클 조던은 야구도 잠시 했지만, 그는 농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선수입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발명왕입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요? 이것을 알 때 행복해집니다. 평범하던 사람이 비범해지는 순간입니다. 남들이 어렵게 하는 것을 나는 쉽게 한다면 그것은 재능이 있고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산다면, 그 사람은 훌륭하지 않을까요? 주님은 베드로를 다시 만났을 때, 내 양을 섬기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꿈을 다시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가슴에는 나를 향한 꿈이 있습니다. 요즘 꿈 없이 살고 있다면 주님께 기도하세요. 주님은 그 꿈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꿈이 살아서 타오를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연인이고, 꿈입니다.
[이기범 칼럼]개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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