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제는 바벨탑입니다. 홍수 사건 뿐만 아니라 바벨탑 사건도 창세기의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바벨탑에 세워졌던 위치는 현재 이라크 땅입니다.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의 믿음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약 60세가 될 때까지 노아가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온 세계로 편만하게 퍼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흩어짐을 면하리라 하면서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닫게 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 때에 니므롯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선동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바벨탑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유대인들의 백과사전에 나옵니다. 바벨탑을 쌓는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상징이며, 노아에게 주신 무지개 언약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도모하는 것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대략 7,000 가지라고 합니다. 현재 성경은 약 1,600가지 언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노아 홍수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에게서 천하 만국 백성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셈은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릇, 아람을 낳았습니다. 엘람은 이란이고, 앗수르는 앗수르고, 아르박삿은 아브라함이 후손이고, 아람은 시리아, 릇은 루디아입니다. 또 함이 낳은 아들들이 오늘날 아프리카의 자손들입니다. 바벨탑 사건과 함께 언어가 어떻게 해서 여러 가지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고 오직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이집트 미라(미이라) 151구의 샘플로 유전자를 검사해 본 결과 뿌리를 알 수 없었던 오늘 날 이집트인들의 혈통 비밀이 드러났습니다. 놀랍게도 그 답은 성경에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 함의 아들 '미스라임'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고대 이집트를 '미스라임(Mizraim)'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근동의 모든 국가들이 비슷한 명칭으로 이집트를 불렀습니다. 노아 후손의 계보를 보면 미스라임은 노아의 손자이자 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집트 현대인들의 DNA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 사하라 사막 이남 출신들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인들의 뿌리를 캐느라 고심해왔지만 확실한 데이터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집트의 인종역사는 문서기록이나 간접적인 고고학 자료들을 갖고, 현대 이집트인들의 유전적 연구와 대조해 가며 추정할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대다수의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인근인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미스라임을 노아의 아들인 함의 아들중 하나이며, 구스(쿠쉬), 미스라임(미츠라임), 붓(풋), 가나안(카나안) 순으로, 곧 둘째 아들로 나열해 놓았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구스가 아프리카에 정착할 동안 미스라임은 이집트에 정착함으로써 서로 구분된 두 나라가 되었습니다. 구스와 이집트 사이엔 공통점이 별반 없으나 과학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이집트가 동일한 뿌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대 미라의 유전자 조사 결과 성경의 해설이 옳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요한네스 크라우제 박사가 이끄는 막스 플랑크 인류학사연구소(MPISHH)는 카이로 남쪽 60마일 지점 아부시르 엘 멜레크의 고대 미라 151구의 샘플을 갖고 연구해 왔습니다. 샘플들은 주전 약 1388년부터 주후 426년까지 1,300년에 걸친 장구한 기간 동안 만들어진 미라로부터 채취했습니다.
사실 이전의 미라 DNA 조사는 결론이 막연했었습니다. 이집트의 기온이 뜨거운 데다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미라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전자가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연구가들은 90 개 미토콘드리아 DNA 견본들과 3개의 게놈(생활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유전자군을 함유하는 염색체 세트) 등 한 유기체의 DNA 전체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하라 이남이나 북 아프리카가 아닌 근동 지역과 남서 아시아 쪽 사람들과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크라우제 박사는 이에 관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하라 남부 출신 선조의 흔적이 제로에 가깝다."며 "그들은 근동인들과 같다."고 단언합니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현대 이집트인들보다는 유럽인 쪽에 더 관련됐다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이는 일부 고대 이집트 왕족들의 이목구비가 일반 아프리카 대륙인들과 달리, 서구인과 닮았음과도 상통합니다.
이 조사에서 이집트인들에 대한 아프리카 대륙인들의 유전적 영향은 로마시대 이후임도 밝혀졌습니다. 이런 점들은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이 내세운 왕조인종론(DRT)을 뒷받침해 줍니다. 즉 이집트 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바다를 통해 건너와 나일 골짜기를 정복하고 제1왕조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집트 초기 지배자들과 그 신민들이 아프리카에서 육로로 도착했다는 기존 설과 대조됩니다. 롤 박사는 그의 책 <레전드-문화의 창세기>에서 이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함과 그의 백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와 홍수 이후 이집트에서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롤은 또 이집트의 신 호루스는 함에서 유래됐다고 설명합니다. 호루스란 '먼 데서 온 자', 곧 멀리서 건너왔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그는 추정합니다. 롤은 지난 1988년 이집트 동부 사막의 마른 강바닥 와디 함마마트를 발굴하면서 이곳이 곧 나일로부터 홍해로 가는 주된 경로라고 파악했습니다. 롤은 주변에서 고대의 벽 조각과 벽화 등을 연구하여, 거기 최다 70명이 탄 긴 배의 조각품이 100여 개나 된다는 점을 주시했습니다. 롤의 이론은 이집트 제1왕조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엘리트가 아라비아 반도 해안선을 따라와 홍해를 거쳐 나일 지역 사막까지 그들의 배를 끌여 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엘리트들이 이집트에 들어온 결과 갑자기 문화적, 기술적 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은 좀 더 입증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이번 발견은 성경이 말하는 고대사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현대과학이 다시 한 번 밝혀준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공부할 때 함의 후손 중 니므롯이란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니므롯의 아내는 천하의 악녀였던 세미라미스였습니다. 니므롯이 죽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세미라미스가 사생아 아들을 낳았습니다. 남편 니므롯이 죽은 후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의 시체를 토막을 내서 각 지방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생아를 니므롯이 자기 몸을 통해 환생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인류 역사에 환생설이 나왔습니다.
세미라미스는 사생아 아들의 이름을 담무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서 8장에 보면 담무스란 이름이 한번 나옵니다. 세미라미스는 자기 아들을 담무스 태양신으로 만들고 자기는 신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세미라미스는 담무스와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세미라미스는 신의 어머니가 되었고, 신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나오는 여신은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세미라미스는 아들 담무스를 창세기 3장에서 말했던 '여인의 후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미라미스는 여왕으로 군림하면서 메소보타미아 지역의 도로와 하수도 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세미라미스가 축성한 고대 바벨론의 공중 정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의 하나입니다. 세미라미스는 1824년 비발디에 레스피기와 로시니의 오페라에도 나오는 유명한 여자 이름입니다.
바벨탑을 쌓다가 혼잡한 언어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이 일반화되어 갔습니다. 바벨론에서는 여신을 세미나미스, 아들 신을 담무스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여신을 싱무(성모)라고 합니다. 독일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신을 헤르타라고 하고, 스칸디나 반도에서는 디사라고 합니다. 에투리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루트리아라고 하고, 드루이드교에서는 여신을 비르가파티두라 합니다. 인도 지방에서는 여신을 인드라니라고 하고, 인도의 다른 지방에서는 데바키라고 하며, 아들을 크리슈나라고 합니다. 슈메르인들은 여신을 나나라고 불렀고, 로마에서는 이 여신을 비너스라고 하였으며, 아들 신을 주피터라고 했습니다.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여신을 키벨레라고 하고 아들 신을 데오스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지방에서는 이 여신을 아스다롯이라고 하고, 에베소 지방에서는 아르테미스 혹은 아데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지방에서는 아프로디테라고 하였고, 애굽에서는 여신을 아이시스라고 하였으며, 아들 신을 호루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들신과 어머니 신이 익숙한 세상에 기독교를 약간 변형시켜서 마리아를 여신으로 만드니까 세트가 잘 맞았는데 이것이 커톨릭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입니다. 천주교의 마리아와 예수는 바벨론 종교의 변신이라고 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마리아 교리가 없었습니다. AD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가를 놓고 논쟁을 하다가 하나님의 어머니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다시 한번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1500년 만에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부, 성모, 성자, 성령 4위 일체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모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며, 그냥 복 있는 여인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카톨릭, 희랍 정교, 러시아 종교와 하나로 묶어서 하나로 돌아가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데 모두 정신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기독교의 큰 집이 아니라 딴 집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READ THE B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