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목사님. 건강하시죠? ^^다름이 아니구요, 제가 저희 교회에서 편집부에서 일하게 됐거든요. 근데 이번에 성전환(Trans gender)에 대해서 기사를 싣는다고 하더군요..제 나름대로 조사도 약간..^^; 해보고,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잘 정리가 되지 않아서.. 목사님께 여쭤봅니다. 과연 성전환이 옳은것인가? 또 신앙인으로써 성전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제 개인적인 생각을 잠깐 말씀드리자면..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이 되는데요..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은 결코 스스로 창조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자신의 모든 조건과 여건에 순합하는것이 인간에게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성전환을 해서 성공한(?) 하리수 같은 경우 자신은 여자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고, 실제로 신문에 나온 그 얼굴을 보면 그게 여자이지 도대체 남자로는 생각이 되질 않더군요...
사실 대중의 인식은 아무 생각없는(?) 상태인것 같구요. 별 판단의 기준이 없어 보입니다. 언론에서도 성전환에 대해서 오히려 찬성하는 입장인듯 하구요..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Q2.   안녕하세요? 저는 진해침례교회 중등부를 맡고 있는 교사입니다. 성전환 해서 최근 대중들에게 화제를 불러 모은 하리수...어떤 학생들은 하리수에게 동정심이 생긴다고 합니다. 성전환은 창조사역을 거역하는 것인데....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하나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평안하세요 

A1.  성전환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좀 복잡한 문제에 속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제 견해를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성을 개인의 뜻에 의해 바꾸는 것은 불가합니다. 율법을 보면 하나님은 여자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조차 가증하게 여기며 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성 자체를 바꾼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가증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이 원칙을 유보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양성을 가진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양성인 중에는 종종 여자의 성기 안에 남성의 성기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겨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그가 남성과 여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를 양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경우 그는 한쪽 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일평생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못 이겨서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본인의 뜻에 따라 한쪽 성기를 절단하고 다른 한쪽 성을 살리는 수술이 불가피해집니다. 이와 같이 기형적인 성의 경우에 한쪽 성을 포기하거나 전환하는 일이 허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종종 성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성좐환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다릅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현재의 성에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문제를 성전환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현재 성전환 심사와 절차는 너무나 까다롭고 힘이 들기 때문에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성전환을 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정신과 의사들이 철저한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성전환 수술 요청자들을 오랜 기간 동안 일대일로 면담해서 그들에게 정말로 성전환이 필요한지 결정을 해야합니다. 또한 그들은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해서 가족의 동의서를 받아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가족들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성전환에 있어서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을 바꾸는 것이 정말로 현재보다 더 행복을 준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성전환을 하기 어렵습니다. 

4. 저는 크리스챤의 경우에는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챤의 경우에는 성령 안에서 이러한 성적 문제를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들을 위해 정신적인 성적 문제를 온전하게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사람들은 정신적인 성 부적응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십지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성적 충격과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성전환을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 금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기독교인들이 성전환을 반대해도 그들은 계속해서 이 일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환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성령 안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성전환 절차를 법적으로 까다롭게 해서 일시적인 충동으로 성전환을 하는 일을 금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에게 정말로 성전환이 필요한 사람을 가려낼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철저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정상인이 아니라 현재의 성에 적응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성적 정신병 환자의 경우에만 적용될 것입니다.  참고로 아래 주소에 접속하시면 성전환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우며 그들이왜 성전환을 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한번 결혼한 부부는 절대 헤어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결혼 생활이 부부에게 너무나 큰 해를 입힐 경우에 이혼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사람이 워낙 타락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허용된 것입니다(마 19:3-9).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거나, 마약 복용이나 기타 일로 인해 부부가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경우에 이혼은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할 수 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전환 문제 역시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할 수 없이 허용해야만 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인간들이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Q.2  저는 사춘기 시절을 포함한 약 십년간을 교회와 주님을 멀리하다가 최근에 다시 신앙생활을 겨우 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가치와 기독교적인 사고가 상충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록음악, 뉴에이지 음악, 동성애, 결혼관 등등 과연 어느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옳다고 보시는 것인지 알지 못해 혼란스럽고 많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이곳 게시판에서 동성애와 하리수씨에 관한 글을 읽고, 저도 그동안 가졌던 의문에 관해 몇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 글을 적습니다. 따지려거나 안티를 걸려거나 하는 목적이 아니라, 제가 너무 궁금하고, 앞으로 크리스챤으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서, 지금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추어 질문하는 것입니다.


1. 일반적으로 동성애, 이성애 등에 관해 '취향'의 문제라고 하는데, 동성애를 느끼는 당사자에 따르면 그건 바꿀수 있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당연히 그렇게 태어났듯이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가운데에는-물론 이성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 사람도 많지만-이성을 사랑하는 일이 당연히 불가능하고 동성을 사랑하는 일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가요? 


2. 사람들은 신체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신체이니, 당당해지라고 말하고 때로는 감사하라고 합니다. 또한 기독교계에서도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보호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구요. 그런데 운영자님의 글에서 동성애자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하셨더군요. 1번의 경우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 노력해봐도 이성을 사랑할 수 없었고, 동성에 대한 감정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지요? 또한 동성애를 정신적인 비정상이 또는 장애로 본다면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인권과 권익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요?


3. 신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이 주님이 주신 신체의 속성을 바꾸는 죄라면, 성형수술이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게 되는 신체적 장애를 고치는 것도 죄인가요? 또한 몸의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 성전환 수술말고 정신치료를 받는 방법이 있다고 하셨는데, 왜 꼭 정신적인 성을 치료해야만 하는지요..


4.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부분은 제가 성경을 잘 몰라서 드리는 질문이기 때문에 우문일 수 있으니 양해해 주세요..성경에는 종종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셔서 선택하시는 왕이나 그 이전의 사사들, 즉 지도자들은 대부분이 남자입니다.(여자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닌지요..)-물론 지금도 여자 목사님은 거 의 없군요....- 제가 언젠가 성경대로라면 '남성우월주의가 올바른 가치인가' 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시대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러지 않았겠냐고 하더군요..그 대답에 대해 확신은 없습니다만..어쨌든, 지금 우리가 구약시대의 율법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신약 시대의 기독교도의 생활과 구약시대의 기독교도의 생활의 법도 다르듯이 성경에 나오는 남성우월의 구절이나, 결혼관, 동성애에 대한 인식등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과 다른 시대이기에 지금보다 보수적일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나요? 좀 횡설수설 한 것 같은데, 답답하시더라도 알려 주세요.... 


A2.
   샬롬!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난 번에 동성애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급히 글을 썼기 때문에 대답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핬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좀더 자세한 답변을 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은 이틀 동안 세미나 강의로 인해 답변을 쓸 시간이 없군요! 그 대신 이 문제에 대한 "라브리 간사"로 있는 성인경 간사님의 글을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읽으신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리플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금요일 이후에 제가 직접 필요한 자료를 드리거나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동성애는 명확한 죄악이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는 '퀴어영화제(Queer Film & Video Festival)'라는 것이 열렸습니다. "퀴어"라는 말은 '성적 소수집단'을 의미하는 말인데,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50여편의 영화 비디오를 상영하는 한국최초의 동성애 영화축제입니다. 아마 국민들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하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 축제는 문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동성애자들이 늘고 있다
몇년 전부터 여러 대학캠퍼스에서는 동성애 써클이 생겨났고, 통신을 통해 동성애 소식지 배포는 물론이고 이제는 동성애 잡지 [BUDDY]가 발행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캠퍼스끼리 연합활동이 전개되고 있어서 해마다 '성축제'라는 것도 열리고 있고, 국제적인 연대를 도모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리고 일부 텔레비전 드라마나 PD수첩 등에서도 이를 공적으로 다루는 등, 미처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논란을 그칠 겨를도 없이 젊은이들 사이에는 새로운 형태의 성문화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입니다.예삿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 학생들이나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이나 소극적인 기도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그들을 정신병자나 에이즈보균자, 혹은 구원받지 못할 자로 낙인을 찍어버리고 괴물같이 멀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상담은 고사하고 만나는 것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에 돕는 것이 매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그 결과 용기 있는 소수의 드러난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거나 소수의 동류들과 어울려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깊은 소외감을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동성애자들을 치유의 대상으로 받아주는 교회나 전문 기관도 거의 없는 형편이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꺼내기 힘든 현실입니다. 예수 믿는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성경적으로 동성애를 정당화 하는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자기정당화가 하도 강한데다가 정치적 힘까지 형성해 가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 하물며 목회자들도 치료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형편입니다.우리 나라에서도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일고 있으며 동성애에 대한 일부 신문의 논조나 영화 평론만 보더라도 거의 적극적인 지지 내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이제 인권 문제로 격상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을 바로 돕는 것이 아닙니다. 방치하고 악화시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동성애를 더 이상 방관할 문제가 아닙니다. 1)동성애는 성적 권력의 행사로 정당화 하는 잘못된 철학적 이념이 기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동성애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3)동성애자들도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이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된 원인은 잘못된 세계관 때문이다
동성애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있습니다.1)동성애란 선천적인 유전적 원인 때문이라고 하는 의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성(異性)보다는 동성(同性)에 끌리는 유전학적 요소를 체내에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자들은 가끔 일란성 쌍둥이, 호르몬 이상자, 생태적 양성자 등이 이런 원인에 속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2)그리고 성장한 환경으로 인해 이성애(異性愛)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동성을 좋아한다는 주장입니다. 감정적 혹은 환경적 배경으로 인해 이성보다는 동성에게 호감과 안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부모나 이성교제에서 심한 상처를 입거나 유아기적 심리 혹은 우정과 사랑의 혼돈으로 인한 미성숙 인격자 사이에서 이런 일이 발행할 수 있습니다.3)그러나 가장 최근의 논의는 동성애란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갖는 성적 권력 행사의 결과이자 수단이며 고유한 인권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성행위의 도덕적 주체로서 인식한다면 동성애를 개인적인 성적 활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며, 성행위의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특히 세번째 견해는 모든 이념과 윤리의 해체를 주장한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 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Histoire de la sexualite, 성의 역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푸코는 쾌락주의적이고 부도덕한 현대문화의 사상적인 기초를 놓은 장본인입니다.(더 자세한 분석은 나의 '푸코의 성담론 비판'을 참고하기 바란다)푸코는 그 책에서 고대 헬라와 로마시대의 유명 철학자들의 성생활을 표본으로, "성행위란 생존의 미학과 권력의 작용으로 인식된 자유의 심사숙고된 기술을 완성시키는 방법이다"([쾌락의 활용] 267, 268), "기존의 성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은 철저하게 권력의 메카니즘 속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동성애를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동성애는 심리학이나 의학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개인의 성격적인 것인 것이므로 허용되어야 한다"([쾌락의 활용] 205-207)고 주장했습니다.사실 푸코는 동성애뿐만 아니라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강간까지도 가능하며 대가만 지불된다면 매춘도 정당하다고 말함으로서 광기 어린 뒤틀린 인식론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연애술'에서 메넬라스의 말을 들어 다음과 같이 남자들의 방탕한 동성애를 의도적으로 미화하기도 했습니다. "남자들과의 그것은 여자들과의 입맞춤처럼 세련되거나 부드럽지도 방탕하지도 않은,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서 우러나는 입맞춤, 결빙되고 입술이 된 신의 술, 그것이 체육관에서 나눈 단순한 입맞춤이다."([자기에의 배려] 252)푸코는 동성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철학적, 역사적 기초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것은 오히려 인간을 해방시키기보다는 거짓된 이데올로기와 쾌락의 희생자들을 낳고 있습니다. 사실 푸코 자신이 자기가 만든 철학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그는 동성애자로 알려졌으며, 동성애를 통해 가장 빨리 전염된다고 알려진 후천성면력결핍증(AIDS)으로 1984년에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푸코의 성담론은 그의 어긋난 성행위의 철학화라고 보았습니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로서 겪었던 사회적인 멸시를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에서 해결하기보다는 학문의 차원으로 옮겨 승화시켰다. 이 점에서 그의 철학은 단순한 이론적 작업이 아니라 삶에서 솟아오른 사유이다."(103인의 현대사상, 658)물론 동성애자들은 의학적 혹은 환경적 원인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영향도 받고 타당성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치유의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세번째 이념적 원인, 즉 동성애는 권력이라고 하는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적을 바꾸기 전에는 치유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악한 경우입니다. 문제는 세번째 원인에 의한 동성애자들의 공통점은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는 왜 죄인가?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가혹하리만큼 단호합니다. 아주 사악한 죄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당시 중동지방의 성문화를 의식한 듯 "너는 여자와 교합함과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위기18:22)고 경고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상 숭배를 사악하고 가증한 일로 취급했는데 동성애를 같은 류의 죄악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신약에서도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동성애자를 말함),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9,10)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 동성애를 왜 죄라고 하는지 그 이유가 아닌 것을 먼저 두 가지 말씀드리고 그 다음에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경제적 이유 때문에 죄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오늘날 어떤 동성애자들은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이유는 노동력 결핍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즉 푸코(M.Foucault)와 같은 사람은 기독교와 자본주의가 정치, 경제적인 목적으로 애를 낳지 않으면 노동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동성애를 정당화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반쪽 진실입니다. 비록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발전하면서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착취할 목적으로 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조직적으로 노동자들의 쾌락을 억압한 적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그의 말대로 20세기 서양 역사를 주물렀던 파시즘, 신보수주의, 민족주의 등이 기독교의 침묵 아래 각종 성적 장치들을 동원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 경제적 목적으로 동성애를 탄압했다는 것을 일부 시인한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노동력 재생산을 목적으로 일부일처 가족제도와 부부간의 이성애적 섹스, 국가적인 인구 정책 등을 통하여 교묘하게 동성애를 탄압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것은 정치 경제적 이유, 특히 노동력의 결핍 때문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둘째, 금욕주의적인 영성 때문에 죄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이유는 섹스와 영성이 대립되거나 기독교가 금욕주의를 부추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푸코는 우리 시대의 성윤리가 규정화되고 엄격하게 된 근본 원인을 기독교적인 세뇌와 각인에 의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기독교 전 시대라 하는 고대 사회의 성윤리보다 더 억압적이며 개방적이지 못하다고 호도하고 했습니다. 그것은 푸코가 1977년 1월에 르몽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오해는 극에 달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부담스러운 유산은 섹스를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이것도 반쪽 진실입니다. 스토트(John R.W.Stott)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어떤 기독교인들은 금욕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일부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중의 하나가 섹스라고 믿으며, 그것은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인 동시에 섬김과 교제의 극치라고 믿습니다.(창세기2:18-25; 고린도전서7:1-7; 디모데후서3:1-5) 한나는 영성이 있는 경건한 여자였지만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한 여자였습니다.(사무엘상1:19,20)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이유는 영성과 섹스가 대립되거나 기독교가 금욕주의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셋째, 창조질서를 깨는 비정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죄라고 합니다동성애는 남자와 여자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성과 성적 정체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남자와 여자는 각각 육체의 차이와 성적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는 남자다운 성적 욕망과 매력이 있고 여자는 여자다운 성적 정열과 매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면에서 동등합니다. 다만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남녀의 이성애적 사랑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고차원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자기 과시인 것입니다.그러나 "제3의 성"이니 운운하는 동성애는 바로 그와 같은 창조 질서의 남녀의 성적 차이와 매력, 그리고 그 고상하고 거룩한 기준을 의도적으로 파괴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일컬어 "역리(逆理)", 즉 남녀의 성을 순리적이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로마서 1:26,27) 바울의 이 말은 섹스란 본래 남자와 여자가 그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 성적 차이와 매력을 바탕으로 즐기고 사용하도록 만들어 졌는데 그것을 고의적으로 거꾸로 사용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입니다.그 밖에도 동성애는 남녀의 인간성과 정체성만 파괴하지 않고 인간 공동체, 즉 인간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1부1처 결혼제도와 자녀 출산, 가족 제도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독신자들과 성적 장애자들의 아름다운 가치관, 즉 인간에게 섹스는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파괴하고 맙니다. 그래서 동성애는 죄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운 고차원적인 성적 정체성을 파괴하고 비정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도 사랑과 진리가 필요하다


첫째, 아무리 동성애가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한 성행위라고 하더라도 동성애자들을 미워하거나 멸시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최근에 라브리가 상담한 동성애자들의 고백에 의하면, "나를 받아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만나고 있다"고 하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자이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한 여자동성연애자(lesbian)는 자기가 끔찍하게 아끼던 후배와 사랑에 빠진 경우인데, 처음에는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들이 자라서 이제는 서로의 육체를 요구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기독교인으로서 심한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는데 해결책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자들에게도 먼저 사랑이 필요합니다. 비록 동성애를 즐기고 있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영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초청하고 함께 식사도 나누고 해야 하지만, 잠을 재워주어야 할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둘째, 이성적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기독교 공동체가 과시해야 합니다. 오랜 동성애 끝에 만난 한 남자에게서 사랑을 느낀 한 여성의 고백입니다. "나는 한 여자와 지난 8년간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오던 중에, 지금 결혼한 그 남자를 만나 몇 번의 데이트를 하면서 그 사람이 다정다감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게 무조건적 사랑을 베풀어주었는데 나는 그 동안 죄된 생활을 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내가 만난 한 동성애자는 얼마나 진짜 사랑이 그리웠든지 미국까지 건너가서 동성애자 교회를 다니며 치료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제 공동체 안에서 성경적인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 안에서의 섹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어떻게 깨어진 사랑이 치유되고 혼전 성윤리가 지켜지는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 그리고 어떤 이유로라도 동성애를 정당화해주거나 그들에게 값싼 동정심을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을 속이는 것이며 결국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미국 여인이 기독교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동성애자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는 한 교회에 출석했는데, 거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성생활을 정당화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을 속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그렇습니다. 동성애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받지 못할 가증한 죄"라고 단호하게 선포한 바울도, 곧 이어서 "너희 중에 이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린도전서 6:11)고 말했습니다. 사랑과 값싼 동성심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가 동성애를 예방하는데 앞서야 합니다. 기독교세계관과 대립되는 사상이며, 영적 전쟁의 최전선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위에 동성애가 제3의 사랑으로 더 퍼저 나가기 전에 교회와 국가가 나서서 예방하고 도와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찾으시는 길잃은 탕자 중에 하나는 동성애자들입니다.

[출처: http://biblenar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