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커서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생각하곤 했다.
신의 능력이 치유로 나타나기를 바라며 단번에 해결해주실 하나님이 잠깐이라도 인간세상에 나타나셔서, 이 아픈 분을 만나서, 단번에 치유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서는 인간적 한계 속에서 오랫동안 치유의 시간을 견디며 기다려야 하기에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신적 능력으로 치유가 임하면 그토록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현저히 줄여줄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일어나는 염원이기도 한 것이었다.
최근에 개봉했다가 금방 내려진 영화, [오두막]을 본 내담자분들이 폭풍눈물을 흘리며 치유에 도움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 영화는 오래 전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을 영화화한 치유영화라고 할 수 있다.
깊고 절실한 치유의 이야기가 담긴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호응이 적어서 금방 영화관에서 내려져버려서 안타깝다. 영화의 내용은 기독교적이지만 치유의 의미에서는 비기독교인도 똑같은 감명과 치유의 영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이른 시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어느 장면에서부터 나 역시 눈물이 쉴 새없이 쏟아졌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 한 사람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가는 장면들......
형언할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받은 한 남자와 눈높이를 맞춘 치유적인 대화를 하면서 그 남자의 가장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서부터 치유가 서서히 일어나는 장면들, 그리고 이해와 공감어린 태도로 기다려주는 사랑의 능력, 심리치료의 진행 과정과 다르지 않은 치유의 과정들.....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들, 그 자리마다 상처입은 사람들의 절규같은 질문들... 여전히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상처입은 남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치유되어갔다.
그 남자의 치유는 끔찍한 기억의 현장인 오두막에 찾아가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는 고통의 기억을 지우려고 애쓴다.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 치유가 안 된다. 고통이 재현되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더라도 상처의 현장으로 갈 때부터 치유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찾아간 오두막에서 지독한 상처를 가진 주인공 남자가 치유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단 일주일씩만 나타나 상담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왜 나여야 하나요?' '왜 구해주시지 않았나요?'라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어린 시절의 내 목소리와 겹쳐서 들렸고 또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와 공명하며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대의 한 내담자는 이 영화를 두번이나 본 이후에 소감을 이렇게 치유일지로 썼다. (허락을 받아 그 치유일지의 일부를 올린다.)
---오두막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그렇게 많이 눈물을 쏟아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었다..... 다 보고나니 무언가 내게서 씻겨 나간 기분이 들었다. 왜 제 곁에 있어주시지 않았나요? 왜 저에게 그런 슬픔을 주셨나요?, 주인공의 대사에 너무 이입되어 나의 어릴 때가 떠올라 감정이 북받쳤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도 대사 한마디한마디가 마음에 날아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도 엄마 아빠를 용서하자고 마음 먹었다. 천번을 용서하려 노력해도 될까말까 할지도 모르지만....내 안의 울타리 안에서만 바라보며 선과 악을 판단내릴 수 없다는 것,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슬프고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을까. 왜 하필 나만 그랬어야 했을까. 이것에 대한 물을들에도 어느 정도 답을 달 수 있을 것 같다. 그 영화 속엔 상담 박사님이 내게 전해주고 싶은 모든 것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박사님은 내게 신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영화 한 편으로 내 마음가짐이 한 순간에 바뀔 순 없겠지만 무언가 한 계단 더 올라가 새로운 문을 연 느낌이 든다. ---
---엄마와 함께 오두막을 보았다. 나는 두번째 보는 건데도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 눈물이 뺨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리며 옷을 적셨다. 이 영화를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상영하는 곳이 없어 멀리까지 가서 봐야했지만 보고나오니 엄마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사 하나하나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확연히 이해하며 마음 속에 꾹꾹 주워담기 바빴고 어느새 영화관은 울음소리로 가득찼다.....엄마도 눈물을 흘리며 치유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엄마와 나의 영화를 본 관점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어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엄마와 함께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붙잡은 것도 참 좋았다.----
이 내담자의 치유일지는 나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큰 감동을 받았다.이 영화는 누군가에는 잔잔한 감동을 줄 것이고, 누군가에겐 큰 깨달음으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치료'는 넓은 의미에서는 예술치료의 범주에 속한다. 한 편의 영화가, 우리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는 고통과 그 의미를 해석하게 해주는 깨달음으로 연결되어 치유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이 영화, 오두막을 보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 속에 가시로 박혀 욱씬거리게 하는 상처들을 속속들이 깊이 들여다보며 더 많은 치유를 이루길 바란다. 우리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독한 고통과 깊은 슬픔이 배어있는 그 곳,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더 치유를 이루길 바란다. 치유를 이루고나서 사랑의 하나님도 진정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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