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아스 도시의 역사
티베리아스는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갈릴리 바다 서안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Julius Caesar Augustus, BC42년 11월 16일~37년 3월 16일)에서 따 왔다.
티베리아스는 주전 20년 헤롯 대왕 1세(헤롯은 로마 제국 시대에 유대 지방에 분봉된 왕으로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과 관련된 왕이다. 예루살렘 성전과 헤로디움, 가이샤라 총독부 등을 건축한 왕이다.)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가 새로이 건설하여 그의 갈릴리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이 도시가 무덤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거주하길 거부했으나 헤롯 안티파스가 강제로 이주시켜 살게 했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수도인 세포리스에서 새로운 수도로 티베리아스를 AD35년경 건설했다. 그는 당시 로마 황제 아우구스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칭송하기 위해 정치적 계산하에 이 도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예루살렘이 AD70년 파괴되면서 경건한 종교적 유대인들이 이방 지역이었던 이곳으로 몰려왔고, 역대 유명한 랍비들의 활동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제2차 유대 항쟁 바르 코크바의 반란(132-135년)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 도시를 이방인의 중심지로 만들었지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자 이곳으로 이주하였고, 세포리에 있던 여러 유대인들도 제도와 기관들을 옮겨와 유대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었다. 그 후 이곳은 예루살렘, 헤브론, 쯔파트에 이어 유대교의 4대 성지가 되었다.
랍비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일 때 이곳에서 AD200년 구약성경을 해석한 책 미쉬나가 만들어졌고, AD500년 미쉬나를 보다 더 정밀하게 해석한 책인 탈무드가 이곳에서 편찬되기도 하였다. 8-9세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모음 부호 첨가 작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중세 동안 전쟁과 지진으로 버려졌다가 십자군 원정 때 다시 예루살렘 왕국에서 갈릴리 지방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살라딘 이후 십자군이 떠나자 다시 버려졌는데 이후 수세기 동안 버려졌다가 다시 유대인이 몰려들어 사는 등 흥망을 반복했다.
18세기와 19세기 들어 많은 유대인 랍비들이 몰려들어 티베리아스는 다시 유대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경과 티베리아스
구약에서는 티베리아스가 언급되지 않는다. 이 도시가 신약시대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구약시대에도 갈릴리 바다 16개 포구가 있었고 그중에 하나인 작은 포구였을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티베리아스가 언급된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기 전에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기록하고 있다. 본문대로 하자면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북서쪽 해안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역하셨지만 당시의 가장 큰 도시였던 신흥 도시 디베랴에서도 일을 보시고 머무셨음을 알 수 가 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디베랴 바닷가에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나타나신 것으로 기록되어졌다. 이것을 볼 때 갈릴리 바다는 주님 시대에 디베랴 바다라 불리우기도 하였던 것 같다.
티베리아스의 오늘
지금은 헤롯 당시의 흔적은 거의 없고 도시 입구에 18세기에 지어진 성벽의 모습이 일부 남아있다. 이방의 갈릴리 한 도시로 배척의 대상이었던 이곳이 유대인들에게 각광을 받는 곳이 된 것은 여간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니다. 주님께서 활동하셨던 주 무대에 유대교에 이어 이슬람교가 지나가면서 지금은 세속화된 현대도시가 되었다.
남쪽으로 온천지대가 있었으며(이 온천은 온도가 140도 정도 되는데 1세기에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온천 수영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다. 필자는 이스라엘을 처음 방문한 1993년 2월 성지 순례 중에 이 온천 수영장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바라보았던 별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티베리아스는 현대도시로서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했다. 약 10만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이 도시는 갈릴리 바다를 배경으로 한 관광 산업이 활발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휴가철에 갈 수 있는 두 곳(홍해와 갈릴리 바다) 중 하나로서 호텔업이 발달하였다. 주변에는 동편으로 골란고원을 비롯하여 많은 배후 도시들과 키부츠 마을들이 있다. 숨겨진 마을들 중에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많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필자는 2018년에 갈릴리에서 다시 선교 사역을 시작해 볼까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조만간에 티베리아스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산되어 갈릴리 바다에서 춤추며 유행가를 부르는 젊은이들이 변화되고 말씀의 은혜에 젖어 주님을 찬양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단기선교팀이 오면 티베리아스 시내와 바닷가에서 찬양 전도하는 일을 하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쳐다본다. 16년 전에 영국에서 단기팀이 와서 시내 전도 찬양할 때 사람들이 우리가 거리에서 공연하는 예술가들인 줄 착각하고 동전을 던지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대구 화원교회 단기팀이 왔을 때는 두 자매가 드레스를 입고 워십 댄싱을 하였고 우리는 찬양을 하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미그달과 겟네사렛
미그달(Migdal)은 티베리아스에서 북쪽으로 해변 길을 가다가 만나는 키부츠 마을이다. 호수가에 조그만 교회 탑이 보이는데 이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현대 미그달은 농촌도시로서 유실수를 재배하는 아름다운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 겟네사렛(Ginosar)에서는 1986년 갈릴리 가뭄 때 발견된 길이 8m 폭 2.5m의 예수님 당시의 목선을 관람할 수 있다.
그외 티베리아스 주변 지역으로 미그달과 마주 보는 곳에 있는 아르벨 산을 들 수 있겠다. 이 산에서는 로마에 대항한 1차 반란 시 유대군인들이 굴 속에 숨어 항전한 적이 있었고 로마 군인들이 바구니를 달아내려 반란군을 잡아 죽었다는 내용이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 나타나고 있다. 산 정상 부근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고 서편 절벽에는 곳곳마다 동굴들이 뚫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갈릴리 바다의 아침이 너무나 아름답다. 우기가 되면 티베리아스 남쪽 들에 핀 빨간 백합화가 너무나 아름답다. 사람은 가고 없지만 백합화는 창조 후 지금까지 여전히 피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주님의 말씀을 말없이 전달해 주고 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6: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