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저녁, 청년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담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밖이 시끌해졌습니다. 이웃 집에서 문제를 일으킨 한 남자가 경찰을 피해 저희 집 담을 넘어 차고로 숨어든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다섯 명의 경찰들이 저희 집으로 몰아닥쳤고 저는 그 때 작전을 수행하는 경찰견을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사나워 보이는 검은색의 경찰견은 다른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범인의 냄새가 나는 곳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눈 음식들이 식탁에 즐비했는데도 그 곳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경찰들이 제 동의를 받고 줄을 풀어 주자마자 경찰견은 범인이 숨어 들어간 어두운 차고 입구로 달려가 사납게 ‘컹, 컹’ 짖어댔습니다. 경찰견의 ‘영광’이었습니다. 명견을 명견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의 축복으로 화려하게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분의 뜻에 순복하고 그 분의 말씀에 제어가 되는 인생이 되는게 아닐까요?
제가 다윗을 존경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능력과 축복을 다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네가 아니다’ 하셨을 때 중단한 점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강력하신 때는 언제였습니까? 병을 고치시고 인기를 얻으신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우리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생명을 버리신 순간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것을 ‘영광’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성도의 능력이 여기 있습니다. 복수를 못해서 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복수할 수 있는 방법과 힘이 있는데 아버지의 뜻대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길 수 있는데 아버지의 뜻이라면 지는 것입니다.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전진하라 하시면 가고 중단하고 싶지 않은데 서라 하시면 서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모든 일을 기쁘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독기 어린 그리스도인’은 엄밀히 말해서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진정한 강자는 부여받은 힘을 선한 목적을 위해 조절할 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 아니라 그 뜻과 목적을 위해 온전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입니다. 수수했지만 그 어떤 화려한 애완견, 미용견보다 위용있던 경찰견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말 탄 정복자로 오시지 않고 나귀를 타고 겸손히 오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영광’이 가득한 종려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