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9-11절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후에 제자들을 거듭 찾아주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두 번 대면한 베드로와 동료들은 함께 철야 고기잡이 작업에 나선다. 그러나 노동 무가치의 경험만 남는 듯했다. 밤새 허탕만 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디베랴 호수 제자들 곁에 와 계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적적 포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 요한은 그제야 호숫가에 서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 명하신 분이 주님인 줄 깨닫고 이 사실을 베드로에 일러 준다. 열정과 특심이 남다른 베드로는 예수님을 빨리 뵙고 싶은 맘에 서둘러 겉옷을 두른 후, 동료들과 포획한 물고기들을 뒤로 한 채 바로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뭍으로 올라온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이 피워 놓은 숯불을 발견한다. 주님께서 친히 아침밥상을 차리고 계셨음을 본다. 오늘 아침 메뉴는 숯불구이 생선과 떡이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잡지 못한 공허함과 허탈감에 짓눌려 있었는데, 이제는 한 마디로 축제판이다! 주님께서 이미 생선과 떡을 준비하고 계셨고 (21:9), 또 이제 막 기적적으로 포획한 생선들을 가져오라고 명하신다 (21:10).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바로 움직인다. 고기 잡는 일에도 앞장섰고, 주님을 발견한 후 단 일초라도 예수님을 빨리 만나려고 물속에 몸을 바로 던진 베드로가 이번에도 선수를 친다. 베드로는 큰 물고기들로 가득한 그물을 뭍으로 옮긴다. 너무 신기했는지 한 마리씩 세어본다. 하나, 둘, 셋, … 열, 스물, 서른…, 백, … 헉 모두153마리나 된다. 그것도 큰놈들로 말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밤새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없었는데, 주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가 그것도 큰놈들로 걸려들었다! 정말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 말씀대로 살면, 결실하고 수확하는 풍성한 삶을 누린다. 때로는 주님 따름으로 인해 더 어려움과 핍박을 겪지만,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될 것이다 (갈6:9 참조).
그런데 사실 기적적 포획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다. 큰 물고기들이 그렇게 많이 걸렸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그물은 일반적으로 목화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쉽게 찢어졌고 종종 수선해야만 했다. 원래 저자 요한도 그물을 수선하던 중에 처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막 1:19 참조). 원래 잘 찢어지는 편인 목화 그물이 어떻게 이 큰 물고기 153마리를 견뎠을까? 아무리 봐도 신적 보존에 대한 암시가 느껴진다 (요21:18-19 참조).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없던 디베랴 호수에서 큰 물고기 153마리가 단숨에 포획된 것은 분명 기적이다. 그러나 부실한 목화 그물이153마리나 되는 큰 물고기의 중량을 견뎌낸 것은 그보다 더 큰 기적이다. 저자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강조한다.
이같이 [큰 물고기가]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21:11)
처음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을 부르실 때도 기적적 포획의 역사가 있었다 (눅 5:1-11). 그러나 그때는 그물이 찢어졌었다.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그물이 이처럼 성할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님께서 지금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 것일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는 걸까? (요21:15-19 참조)
암 말기 환자가 기도를 통해 회복되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고통이 극심한 삶 가운데도 암에 걸리지 않는 것 역시 기적이다. 차가 폐차될 만큼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몸에 아무 이상이 없으면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한 해 교통사고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감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이처럼 “기적”을 논할 때 보존의 은혜보다는 즉각적 치유와 회복에 편향적으로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즉각적 치유와 회복만 기적이 아니다. 무겁고 버거운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우리를 보존하시고 보호하시는 것 역시 주님의 놀라운 기적이다.
제자들은 디베랴 호수에서 이중의 기적을 경험했다. 엄청난 포획이 기적이듯 특별한 보존 역시 기적이다.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는 저자 요한의 목격담은 연약하고 흠 많고 실수투성이인 제자들을 보존하고 보호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해 잠시 멈추어 묵상하도록 독자들을 초청한다 (시편 46:10 참조).
사실 미래는 항상 불확실해 보이지만, 지난 일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주님의 도우심 없었다면 벌써 쓰러지고 자빠져서 못 일어날 일들이 여럿 있었다. 삶이 늘 쉽진 않았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다. 그 은혜로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악된 날 붙잡아 주시고 보존해주셨기에 여기까지 왔다. 사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다르지 않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영을 통한 새 창조의 역사 가운데 지금보다 더 충성 되고 신실한 오늘과 내일을 믿고 기대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주님 앞에서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 많은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그 날까진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날 붙잡아 주시고 보존해 주신 은혜의 주님께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이 땅에서 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도 연약한 나를 그렇게 지켜 주실 것을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주님을 신뢰하고 내일도 내 인생을 주님께 의탁할 것이다. 요한의 목격담은 사실 나 자신의 고백이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된 우리 모두의 고백이다.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21:11)”